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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밀알]을 읽고... - 배형규 목사를 모욕하는 책



[
아프간의 밀알]을 읽고...
배형규 목사를 모욕하는 책에 지나지 않는다



아프간의 밀알을 샀다. 그리고 읽었다.

블로고스피어는 어제부터 뜨거웠다. 자숙하겠다던 아프간 인질들이, '순교'를 주장하는 책 "아프간의 밀알"이 인터넷 서점에 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블로거들은 아프간의 밀알의 목차나 일부 공개된 부분만 가지고 상당히 심한 수준의 비난을 시작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단, 이 책의 내용이 어떤지는 목차나 일부 공개된 부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책의 내용이 단순히 배형규 목사를 추도하는 글일 수도 있고, 그 논조가 그리 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측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지도 않고서 책을 욕한다는 것은 나중에 역공(?)을 당할 수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2007년 10월 24일) 오후에 교보문고에 전화를 걸어서 재고가 있음을 확인했고, 한걸음에 달려가서 책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이제부터 그 감상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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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굴 위한 책인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전체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참 어설프게 "짜깁기 한 책"이다. 처음부터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 기도문이 나오질 않나 (26-27쪽), 한국교회 교회사 요약이 난데없이 등장한다. (30-56쪽) 그리고 여기서는, 조선의 "미개함"을 강력히 비판하며, 기독교의 위대함을 증거하는 여러가지 기적같은 일(별거 아니긴 하지만)을 열거한다. 무려 27쪽에 이르는 이 부분은 그냥 책장을 넘기게 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박은조 목사"라는 소제목이 등장하면서 그 분의 "위대한 역사"에 대해서 할애하기 시작한다.(57-62쪽)

그리고 63쪽에 다다라서, 간신히 "배형규 목사"가 썼다는 "샘물교회 청년회의 꿈"이란 시 비슷한 것이 등장한다. 그것도 한쪽만 할애했다.

그 다음엔 난데없이 "기사인지 글인지 알수 없는 글"들이 이어진다.(64-71쪽) 그러더니 다시 피랍자 석방을 촉구하는 호소문이 실리고, 역시나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의 기도서신"이 1탄부터 5탄까지75-87쪽에 나타난다.

그리고 갑자기 88쪽부터는 배목사의님의 형의 글이 나타나고,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배형규 목사 천국 환송예배"에 대한스케치가 나온다. (물론, 상당 부분 목사님을 애도하는 부분이 나오긴 한다)

그리고 "배형규 목사와 토마스 목사의 공통점"으로 이 책의 전체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드디어 꺼낸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보다 더 무서운 곳이 그 당시 조선이었습니다.
[아프간의 밀알, 97쪽]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그 무시무시한 조선에 오직 "성경 500권"을 보급하고자 온 토마스 목사는 처형된다. 그리고 고 배형규목사를 순교자로 부르면서 "배형규목사=토마스목사"란 공식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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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건은 무엇이냐 하면.. "셔먼호 사건"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다음백과사전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9j1600a " 참조 (브리태니커사전)


1866년(고종 3) 8월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면서 대동강으로 올라와 해적질하던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불태워진 사건.

이 사건을 같은 책, 154쪽의 내용에서 살펴보자.

그들은 한양으로 가서 국왕을 만나 선교의 자유와 무역 거래를 요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동강을 한강으로 잘못 알았고 평양을 한양으로 착각하고 조선 관리들에게 국왕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하다가 이미 쇄국정책으로 모든 통상을 거절한 상황에서 조선군과 싸움이 났다...


[아프간의 밀알] 154쪽, "순교의 씨앗" 중에서

이 책에서는 셔먼호가 "무리한 짓"을 했다는 것까지 드러내놓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개 상선이 "왕"을 만나겠다고 오다가 완전히 샛길로 빠져서 이상한 동네에 가서 "왕 나오라고 해!"라고 한 사건이다. 그것뿐인가? 아래의 내용을 살펴보라

그러나 프레스턴 일당은 물러가지 않았고, 야간에는 상륙하여 약탈까지 자행했다. 그리고 폭우로 수위가 높아진 대동강 상류까지 나아가 16일 만경대 부근에 정박했다. 조선의 이현익은 부하 박치영(朴致永)·유순원(兪淳遠)과 함께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배에 접근했다가 제너럴 셔먼호에 붙잡혀 감금당했다. [위 다음 사전 내용]

뭐, 완전 무장한 선원들이 와서 약탈까지 하면서 우리의 관원까지 잡아가서 협상을 벌인 사건이다. 그리고 밀물 썰물을 파악하지 못해서 좌초되어 완전 무장한 19명의 선원들과 더불어 토마스 목사가 죽음을 당한다. 어떻게 보면 당시 상황으로 보면, 조선의 당연한 국가 수호의 과정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기독교 신자분들의 논란을 환영하지 않겠다.)

어쨌든, 일개 상선(그것도 무장한)이 FTA를 요구하면서(^^) 조선의 국왕보고 "나오라고 그래"하다가 상륙해서 약탈하고 납치하다가, 잡혀서 모두 죽임을 당한 사건 속에서 같이 왔던 그 '토마스 목사'를 순교자로 규정하는 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그 토마스 목사를 이번 아프간 사태에서 죽임을 당했던 배형규 목사와 동일시 하는 것은, 오히려 배형규 목사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배형규 목사는 총칼을 앞세우고 교역을 요구하거나 약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목이 "순교자 배형규 목사의 삶과 죽음"이라고 하지만, 이 책에는 배형규 목사님의 삶과 죽음보다는 각종 신문기사 (뒤에서 말하겠지만, 어느 신문을 인용했는지조차 써 있지 않다.) 와 더불어서 각종 기독교 관련 잡지에 실린 글들, 한국 교회의 해외 선교에 대한 이야기, 무엇보다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의 이번 사건 처리의 위대함 (216-220쪽)에 대해서 자세히 써 놓았다.

240쪽부터271쪽까지는 우리나라 순교자의 역사라는 코너로 가득채우고 있고, 272쪽부터 비로소 "저자코너"란 부분이 나오면서 성경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95쪽에 이르러 찬송가 악보를 내보이며, 책은 끝난다.

고 배형규 목사의 일대기가 나온다든지, 그 분의 진실성이라든지, 여태까지 살아온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 아니라, 이건 오로지 "아프간 사태는 나쁜 이슬람인이 기독교를 박해한 사건" 이란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배형규 목사님이 순교자라면, 같이 돌아가신 고 심성민씨는 순교자가 아닌가? 왜 심성민씨의 순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는지도 궁금하다.

('왜 심성민씨였나' 라는 기사와 더불어 몇개의 기사를 배열하고 장례식 장면을 소개한 것이 전부다. 오히려 "삶을 양보한 ...씨"라는 기사를 더욱 더 강조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용의 대부분을 "선교의 정당성"에 할애

이 책의 전반부에는 이번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분들을 "봉사단"이라 지칭하고, 후반부로 가서는 "선교단"이라고 하든지 "봉사 선교단"이라고 부른다. 뭐, 이에 대해서는 워낙 설전이 오갔으나, 이에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주는 부분이 있다.

203쪽-207쪽 "교회복음신문에 실린 기고문을 인용한 부분"

상황이 불길하게 돌아가자 가족들과 정부, 교회까지도 "아프간에 간 목적은 선교가 아니라 봉사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테러집단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충정에는 이해가 간다. 특히 피랍자 가족들 중에는 "샘물교회서 단체로 갔지만 누가 혼자서 선뜻 그곳에가 봉사할 수 있겠냐"며 "비록 교회 이름을 달고 갔지만 순수한 봉사활동이었다"고 강변했다.

또 어느 피랍자 아버지는 "제가 딸에게 '전도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딸이 웃으면서, '아빠, 말도 안통하는데 무슨 전도야. 그냥 봉사하러 가는 거야'라고 하더군요. 정말 순수한 봉사입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중략)

조선의 쇄국정책은 탈레반보다도 더 악랄하게 기독교를 탄압했다. 현지인의 정서를 존중하려거든 차라리 집에서 애나 보는 것이 편할 것이다. 더구나 '단기선교' 대신 '단기봉사'라는 표현을 쓰라는 데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힌다... (중략) 훼방이 귀찮아, 비난이 싫어서 복음의 모습을 감추고 덮는다면 선교일 수 없다.


(중략) 지금 상황에서는 선교팀을 나무랄 게재가 아닌 것이다. 무지막지한 이슬람 무장단체의 표적이 되었다는, 불행하게도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데 비극이 있다.

여기서 강력하게 비판하는 "봉사"라고 하지말라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 이 책의 124쪽부터 128쪽에 나온 "한국 교회 선교방향의 전환 필요하다"는 기고를 전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 책에서 내 판단으로 가장 이성적인 부분이라 생각되는 이 부분은, 뒷부분의 위의 글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다. 이 책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은 부분이다.

아주 명확한 지적이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겸손과 사랑과 지혜로 복음전파와 사랑 실천을 하라는 것.
둘째, 현지인들의 정서를 깊이 고려하고 존중하며 현지인들의 마음에 상처나 거부감을 주지 말아야 할 것.

셋째, 현지인, 현지 교회, 현지 선교사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질 것.

넷째, 단기'선교'보다는 단기'봉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정부의 방침을 무시하지 말 것.


다섯째,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한 지역에서는 대형집회나 행진을 삼가할 것.
여섯째, 범교계적으로 "위기관리종합기구"와 함께 "세계봉사연합기구"를 가동할 것.
일곱째, 그렇다고.. 안전위주로만 치닫지는 말것...
(124-128쪽의 내용을 정리함)

이 책이 위의 기조를 유지했더라면 별 문제가 안되겠지만, 불행히도, 뒷부분에는 정말 심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내가 굳이 이렇게 공개하는 것은, 이 책이 이미 샘물교회측과 상관없는데도 출판되었다는 이유로 판매금지가 되었다는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을 제목으로만, 목차로만 접할 가능성이 커졌으므로, 일부라도 소개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208쪽 "그들은 왜 아프가니스탄에 갔는가?" 중에서

심지어 교계에서까지 "선교를 반성하느니", "회개하느니" 하는 허튼 소리를 하는, 소위 기독교 지도자들의 나약한 소리가 들린다.

선교에 반성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또 회개는 뭐 말라죽은 것인가?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소리를 내지르는 목회자와 지도자들이야말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중략)

그들이 거기 간 것은 신앙의 비전 때문이다..


209쪽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선교"

하나님의 선교 비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일일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이 시대 교회는 어떤 고난과 시련을 딛고서라도 하나님 나라 확장에 몸을 던져야 한다.
(중략)

이슬람의 나라 아프간, 극단주의자들인 탈레반이 눈을 부라리고 날뛰는 그 나라에 가면서 위험을 예지치 않았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다면 한심한 사람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와 지도자들에게 있다.

선교에는 반성이 있을 수 없다.. (후략)


211쪽 "분쟁지역 선교 더욱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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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는 아무리 위험해도 분쟁 지역으로의 선교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전쟁과 분쟁이 있는 위험한 곳에 더 많은 그리스도인 피스메이커들을 파견하기를 원한다"며, "원래부터 선교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라 했다.
(중략)

"분쟁지역이 위험하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 정부가 반대하기 때문에 그 곳에서의 선교를 접어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212쪽 "미국 기독교인 69% 분쟁지역 선교활동을 지지한다"

(내용 생략)

215쪽 "아프간 사태, 우연아닌 하나님의 계획"

(일부발췌)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 국가를 향한 한국교회의 선교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섭리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방은 바로 이 책의 105쪽에 나온 글이다.


둘째,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의 봉사활동이 이슬람을 자극한다는 극히 상식적인 주장이 적지 않은데 한심한 주장이다. 이슬람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무신론자들이다. 무속신앙 소유자나 불교신자들이다. 무슬림들은 창조주 신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는 자들을 혐오한다.

무슬림들을 자극하는 것은 창조주 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인터넷 댓글에서 기독교인을 비난하는 무신론자들이다. 만약,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거나 "나는 부처를 믿는다고" 말했다가는 거의 "돼지"취급을  하는 것이 무슬림들이다. 이렇듯 이슬람에 대한 무지가 극히 상식적인 오류를 낳게 하는 것이다.

(중략)

넷째, 한국정부는 최근 국민 해외여행규제법을 마련하여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 법에 의하면 "종군기자" 및 "인도주의적 차원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ㅈ어부가 특정 위험국가 여행을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만약 한국정부가 "인도주의적 활동"에서 해외 기독교봉사활동을 배제시키려 하거나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범주화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종교탄압이 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어떤 이유에서도 국가는 종교활동을 통제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

정말 이 부분에 이르면 할 말이 없다. 후환이 두려운 편집자는 "특정종교나 종교인을 비방하려는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라고 했다.

세상에. 실컷욕해놓고서 그게 비방이 아니라니. 이 책은 정말... 너무하다.


인용한 기사의 저작권 확보는 뒷전

이 책은 상당히 많은 신문 기사를 인용 혹은 전재한 책이다. 몇몇 내용을 읽다가, 아무래도 신문기사인 것 같아서 출판사 측에 확인을 요청하는 전화를 했다. 출판사는 친절하게 "우리는 잘 모르고, 목사님이 가져오신 자료를 썼다. 목사님께 여쭈어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걸어서 확인한 결과, "신문기사를 그냥 썼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즉, 신문기사를 그냥 전재하면서 출처도 안밝힌데다가, "출판"이라는 영리 행위를 했으니 저작권을 위반해도 보통 위반한 일이 아니다.


책을 낸 저의가 궁금하다

난 이 책을 읽고서 "박은조 목사에 대한 용비어천가"라는 기분을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최대 수혜자인(?) 그 분이 계신 교회에서 판매 금지를 한다는 소식도 읽었다. (http://blog.naver.com/fangoria/100043343429 참조) 그렇다면, 과잉충성자들의 오버였을까?

어쨌든, 이 책은 순교자 배형규 목사에 대한 책이 아니다. 책 표지와 제목에만 그 분의 이름을 빌려썼을뿐, 그분에 대한 애도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배형규 목사가 순교자라면, 마땅히 심성민씨도 같은 순교자라고 해야 될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목사님이 납치되어 죽으면 순교고, 일반 신도가 납치되어 죽으면 그냥 일반 죽음인가?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순교자의 조건"을 운운하면서 끼워맞추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순교자의 조건이란게 "언행일치의 복음적 순교적 삶이 있어야 한다"와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가 모두 다다. [책 274-275쪽에서 발췌했음] 내가 신자가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

그 분들은 선교(또는 봉사)를 하러 가셨지만, 종교적인 적들에 의해서 탄압받은 것이 아닌, 단지 '이슬람에서도 내놓은 사람들'이 돈을 목적으로 납치한 것이 아닌가? 이런 사건을 굳이 종교적으로 갖다 붙이려는 노력은 그 의도가 불순하다.

이는 두 고인에 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두 분의 희생을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각종 자료들을 짜깁기해서 내 놓으면서도 출처를 발히지 않은 자료가 수두룩하며, 그 부분에 대해서 저작권 확보도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저자들(3명)과 함께 출판사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다시 촉구한다. 아프간 사태에 관련된 분들.. 조용하시라
 
이미 나는 아프간 피랍자들, 기자회견은 이제 그만   이란 글을 통해서, 아프간 피랍자들이 세상에 나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만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번 책은 불행중 다행으로 그 분들이 쓰지 않으셨다. 앞으로도 쭈욱...간증이나 이런 프로에 나오셔서 "탈레반의 악랄함" 등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일이 없기 바란다.

이미 국민은 아프간 피랍자들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그분들이 아무리 봉사를 해도 지워지지 않으리라. 그리고 기독교에 입힌 상처는 어떤가? 그리고 아프간에서 묵묵히 일하는 우리의 파병군인들은 어떻고.

생각이 있다면...이제 좀 조용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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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서 기독교계에 참 다양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이 세 분의 저자들이 쓴 글보다도 여러가지 문서를 모은 책이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때는, 가끔씩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한 번 쯤은 생각해 보고 말씀하시길 권해드린다.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비하하는 사람이 모두 무신론자나 반기독교인이라고 착각하는 그런 발상부터 고쳐야, 이 나라의 기독교가 더욱 제대로 종교로서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으리라.


미디어 한글로.
2007.10.25

http://media.hangul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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