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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전 의학소설, 현실이 되다 - 로빈쿡 의학소설 '열(Fever)' 면역세포 요법을 예언


16년전 의학소설, 현실이 되다
로빈쿡 장편소설 '열 Fever', 면역 세포 요법의 미래를 예언



의학 소설의 대가 로빈 쿡. 1992년작 '열(Fever)'

로빈 쿡은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의학 소설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콜롬비아 의과대학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의사로서 소설가로서 현대 의학 윤리를 질문하는 소설들을 의욕적으로 써왔다. (도서출판 열림원 작가소개 참조)

코마를 시작으로 <브레인(Brain)>, <열(Fever)>, <돌연변이(Mutation)>, <암센터(Terminal)>등을 내놓았고, 유전자 조작(6번 염색체), 생물학 테러리즘(벡터)등 굵직한 베스트셀러를 내 놓았다.

나는 초기 작품인 열, 죽음의 신, 돌연변이 등을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근 면역 세포 요법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갑자기 "열"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책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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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열"을 보면 생각나는 영화 둘


일단, 면역 세포 요법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두 편의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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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 브로코비치"(2000년작, http://movie.daum.net/movieInfo?mkey=129)는 PG&E라는 대기업에서 유출되는 중금속 크롬때문에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대기업에 맞서서 싸우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열"에서 주인공 의사는 자신의 딸이 근처 공장에서 누출된 '벤젠'때문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리고, 그 사실을 알아낸 주인공이 증거를 찾고, 공장을 고발하려고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성공하지만, 소설 '열'속의 주인공은 실패한다. 그 공장을 운영하는 주체가 바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내부 고발자로 해고까지 당하는 신세가 된다.





또 하나의 영화는 2002년작, 존 큐(John Q) [영화정보 http://movie.daum.net/movieInfo?mkey=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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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는 최근 개봉된 마이클 무어의 '식코(Sicko)'와 더불어 미국 민영의료보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이 영화가 생각난 것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병원을 점령하고 경찰과 대치하는 부분때문이다.

소설 "열"에서 주인공은 딸이 화학요법(일반적인 암치료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면역 세포 요법으로 고쳐보겠다면서 딸을 병원에서 탈출시키고, 자신의 집을 요새처럼 꾸며 놓고 경찰과 대치한다. 경찰은 '정신나간 의사'로 규정하고 딸을 구해내려고 하지만, 아버지를 믿는 아들들과 부인은 오히려 집안으로 들어가 '한 패'가 된다.

그리고, 모든 치료가 끝난후에 모두 잡힌다. 물론, 딸은 살아난다.



면역 세포 요법과 화학요법

화학요법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치료법이다. 약을 써서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이다. 그런데, 모두 알다시피 암세포만 찾아서 죽이면 좋겠지만, 멀쩡한 세포도 같이 죽는다. 그래서 암 정복이 쉬운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화학요법에 대해서 상당히 '잔인하고 무모하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는 주인공의 '면역 세포요법'에 대한 믿음을 독자에게 이입시키려는 장치일 것이다.

일단, 책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캔서랜과 같은 세포를 죽이는 극약들은 암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없어요. 그건 그런 약들이 정상적인 세포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암세포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암세포가 전부 죽어도 환자는 생존에 필요한 정상적인 세포를 여전히 지닐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된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겨우 중간 단계적 접근에 불과한 것이오. 암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법은 생명체의 세포단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에 있어요. 특히 세포들간의 화학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하단 말입니다.

- 로빈쿡 소설 <열> 69쪽에서

이와 같이 주인공은 "캔서랜"이란 가상의 암치료제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나타낸다. 자신이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당장은 성과가 없는 면역요법에 대한 믿음은 엄청나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겐 설명하기가 좀 어렵습니다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암에 대한 면역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연구는 조금 구식입니다. 십년 전엔 그것은 아주 큰 기대를 낳게 했죠. 하지만 그 후는 후속 연구가 미미하여 그 희망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찰스는 거기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알겠지만 현대과학의 발전 속도는 누구에게도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 로빈쿡 소설 <열> 373쪽에서

이 부분은 주인공의 면역요법이 부질없는 짓임을 알려주는 반대파 의사의 말이다. 이때도 오랫동안 연구가 지속되었지만, 그 결과는 미미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단 내 연구는 암에 걸린 세포를 조직에서 분리시켜 그것의 표면에서, 항원이라 불리우는, 특정한 단백질을 추출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어. 항원이란 한 세포와 다른 세포들이 구별되도록 하는 물질이야. 이것만 해도 큰 진전이지. 그 다음 나의 문제는 이 항원에 동물의 면역체계가 반응하여 자신이 비정상적인 암세포를 제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어. 내가 믿기에, 이 것은 정상적인 동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 내 생각에는 암이란 꽤 흔한 현상이지만 바로 체내의 면역체계가 그 암세포를 없애버린다는 것이야. 만약에 면역체계가 깨져 버리면, 바로 그때가 암세포가 뿌리를 심고 자라나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는 것이야. 여기까지 이해가 돼?

- 로빈쿡 소설 <열> 380쪽에서

자신을 믿어준 아내에게, 딸을 납치해서 자신이 치료하려고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결국 내 몸안에 면역세포가 충분히 있다면 암도 충분히 완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은 딸의 몸에서 암세포를 추출해서 자신의 몸에 주입한 후 항원을 만들어내고, 그걸 다시 딸의 몸에 여러차례 투입하는 방식을 택한다.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딸은 건강을 찾는다. 하지만, 로빈 쿡은 약간 비겁한(?) 문장으로 의학계에서 쏟아질 비난을 피해간다.


미셸이 완쾌 되었을 때, 이것이 찰스가 개발한 면역성 주사의 덕택이었는지 아니면 찰스가 데려가기 전에 그 병원에서 받았던 약물치료가 결국 효력을 발휘하였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 로빈쿡 소설 <열> 466쪽


 
그리고 16년 후, 면역 세포 요법의 현재

소설이 발표된 후 16년이 지난 2008년. 과연 면역 세포 요법은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고 있을까? 따지고보면, 줄기세포 연구도 화학요법과 다른 방법으로 여러가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다. 결국, 소설에서 반대파 의사와 달리 화학요법을 대체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온 셈이다.

그 중에서 최근 부쩍 눈에 뜨이는 기술은 바로 <NK세포> 기술이라고 한다. NK세포는 바로 "자연살해세포(Natural Killer Cell)"의 약자인데, 이 세포는 암세포만을 찾아내서 성장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한다. 환자의 몸에서 혈액 등을 채취해서 NK세포를 분리하고, 이 세포를 배양해서 더 많은 숫자로 늘리고 다시 환자의 몸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몸에서 채취한 것이기에 거부 반응도 거의 없는데다 부작용도 적어서 일본에서는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수능주사' 중에도 이 NK세포를 활용한 것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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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K세포는 암세포만 골라서 죽인다고 한다 (사진=http://anti-cancer.tistory.com/)



NK세포를 얻는 방법은 다양한데, 골수나 제대혈에서 얻기도 하는데, 가장 쉬운 것은 그냥 환자의 혈액에서 채취하는 방법이다. 물론, 질병의 종류에 따라서 여러가지 방법이 쓰이기도 한다.

‘항암면역세포 치료법’ 면역 세포 키워 암 잡는다 [일간스포츠] 2008.4.30

(일부발췌)
최근 '항암면역세포 치료'라는 암 치료법이 주목 받고 있다. 암 치료는 통상 외과적 수술, 방사선, 항암 화학요법 등 세 가지를 이용하는 데 새삼 눈길을 끄는 항암면역세포 치료는 환자에게서 채취한 혈액 속 림프구의 면역세포를 배양해 세포 수를 증폭시키거나 기능을 강화해 이를 다시 그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법이다.

체내에 들어간 면역세포는 암세포만을 찾아내 암의 성장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한다. (중략)

▲국내 4개사 3상 임상 돌입


2003년 허가 신청을 한 엔케이바이오(nkbio.com)를 필두로 엔케이바이오이노셀(innocell.com)·이노메디시스(innomedisys.com)·크레아젠(creagene.com) 등 4개 업체가 작년에 3상 임상을 실시하는 조건으로 조건부 품목허가를 받아 협력·제휴 병원에서 시술하고 있다.

엔케이바이오의 NKM, 이노메디시스의 이노락을 비롯해 이노셀의 이뮨셀-LC는 림프구를 추출해 배양하는 활성화 림프구 요법을 쓴다. 이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능력을 지닌 림프구를 체외에서 기능을 강화, 증폭시켜 활성화된 세포를 체내에 투입한다.

엔케이바이오는 면역세포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배양하기가 까다로운 NK세포 위주로 배양이 이루어지며 이노셀과 이노메디시스는 일본에서 주로 이용되는 T세포를 위주로 배양을 하고 있다. 크레아젠의 크레아박스-알씨씨만 수지상세포 요법이다. 이는 림프구에 정보 및 자극을 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수지상 세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중략)
성낙인 엔케이바이오 대표는 "NKM은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인 NK세포를 200배 이상 증식·증강시킨 뒤 20억 개 이상으로 늘어난 면역세포를 다시 환자 체내에 투여하는 맞춤치료제다.

NK세포 뿐만 아니라 T세포·수지상세포를 가장 이상적 비율로 혼합해 항암면역세포치료제로서 최상의 치료효과를 이뤄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며 "NK세포는 항원만 인식하거나 공격만 실행하는 이차원적 특성이 아니라 변이된 세포를 즉시 감지해 파괴까지 혼자 해결하는 삼차원적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항암뿐 아니라 앞으로는 예방을 위한 백신치료에도 적용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사원본 : http://media.daum.net/culture/weather/view.html?cateid=100024&newsid=20080430094013917&cp=hankookis


위 기사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면역세포를 사용한 치료법이 올해부터 활기를 띄고 있다는소리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논란때문에 상당히 오랜 침체기를 가진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줄기세포가 중요하지 않다는 소리가 아니니 흥분마시길!)

그렇다고 현재의 치료법이 잘못이란 것은 아니다. 단지,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기술은 꾸준히, 여러가지 방법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쨌든, 16년 전에는 소설속의 황당한 이야기로 생각되었던 '면역 세포 요법'이 이제는 '실제'가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소리다. 정말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기도 하고, 정말 놀라운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로빈쿡의 소설을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과연 또 어떤 '미래'를 예측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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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열'은 오래된 소설이라  재고있는 서점 찾기가 힘들다.
예스24, 알라딘을 뒤져도 없었는데..
 http://book.daum.net/bookdetail/book.do?bookid=KOR9788970630182
에는 재고가 있다.





★ 혹시 글 내용에 과학적 오류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책과 기사를 꼼꼼하게 살폈지만, 제가 완전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

미디어 한글로
200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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