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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헛발질 하기

성범죄 부추기는 대한민국?


성범죄 부추기는 대한민국?


오늘, 연달아 발표된 세 개의 판결

미국의 드라마, 특히 수사물을 보다보면 성범죄,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는 극악 무도한 죄인으로 처리한다. '특수수사대 SVU'는 아예 이런 특별범죄만 다루는 팀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시작에도 "성범죄는 중형으로 다스리며.. "라는 식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오늘 세 개의 판결을 보면서 참 기분이 이상했다.

[사건 하나]
짧은치마 입은 여성의 다리 촬영 행위 `무죄' [연합뉴스] 2008.3.23
http://media.daum.net/society/woman/view.html?cateid=1023&newsid=20080323163210249&cp=yonhap
(일부발췌)
다른 사람의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촬영했다 해도 성폭력범죄 처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원심의 인정 내용에 대해 옳다고 판단한 것은 맞지만, 성폭력처벌법의 해당 조항에 대해 구체적 신체 부위의 기준점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변명도 변명이지만, 어쨌든, 이제는 '지하철에서 마음놓고 촬영해도 되는건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무죄라니까.... 물론, 이 사건의 경우에는 조금 특이하게 잡혀서 그런것 같다. 만약 그 자리에서 걸렸다면, 벌금형(전과에 해당한다) 정도는 쉽게 나오지 않을까?

[추가] 예상대로 사진의 증거능력(?)이 불충분해서 그렇다고 한다. 얼굴만 빼고 쭈욱 찍은 사진이라는데... 그것으로는 처벌을 못한다는 모양이다. 과연 검찰의 닭짓이었나, 아니면 대법원의 관대함인가... 글쎄... 어쨌든, 이 기사 읽고 내일부터 사진찍는 인간들 모두 잡혀가면 깨소금 맛이겠다. ^^ 댓글에 '보이라고 내놓은 다리 좀 찍는게 어때서'라면서 혹시 사진찍으려는 분들.. 고생좀 하시겠다.

[관련기사] 성적 수치심 유발 신체부위는 어디까지 [연합뉴스] 2008.3.23
성적 수치심 기사 관련 곤혹스런 대법원 [미아리홍] 2008.3.23
↑ 위의 글을 보면 판결이 어느정도 이해는 가지만, 제대로 찍힌 사진을 가정하에 단 댓글들을 읽다보면, 우리나라가 성범죄 부추긴다는 가설은 완벽할 정도로 맞는다는 생각이든다.



[사건 둘]

대법 "인간존엄성 해칠만큼 적나라해야 음란물" [세계일보] 2008.3.23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80323170211392&cp=segye&RIGHT_COMM=R12

김씨는 정보이용료의 50%를 받기로 계약하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야후코리아에 2004년 8월부터 8개월 동안 성행위를 묘사한 동영상 12편을 VOD 성인페이지에 올리고, 시청자에게 한 편당 2000원을 받아 월 평균 4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에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해당 영상은 인터넷 동영상으로 제작되기 전 비디오나 DVD용으로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의 '18세 관람가' 등급분류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음란성을 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영등위가 등급분류 과정에서 음란성 여부를 판단했더라도 음란성 판단의 최종 주체는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이라며 "이 사건 영상은 주로 호색적 흥미를 돋울 뿐, 예술성이 전혀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영상은 주로 성행위와 애무장면을 묘사했지만 성기나 음모의 직접적 노출이 없다"며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상당히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지만 형사법상 규제할 만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음란성이 인정되려면 표현물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단순히 저속하고, 문란한 정도를 넘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볼 만큼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묘사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심은 동영상은 인터넷에 게시되기 때문에 아동·청소년에 대한 유해성을 고려해 보다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이는 성인 인증절차 강화 등을 통해 대처할 문제"라며 "비디오물과 인터넷 동영상의 음란 여부를 달리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얼마전 나는 신문사 홈페이지들이 음란물을 유포하고 있으며, 이를 트래픽 올리기에 이용하고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대법원의 판단이 이정도면, "신문사에서 유포되는 사진들은 음란물 유포가 아니다" 라고 판결을 내릴 것 같다. ( 음란물 보급에 앞장서는 언론사들 참조)

왜냐하면, 적어도 성기 등은 가렸으니까. 그렇다면, 음란물의 판단이 단순한 그러한 기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대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 이면 이건 음란물 중에서 "변태"에 해당하는 부분의 "장르적 구분"일 뿐 아닐까?

그러면,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내 기준에) 음란물 사진들을 돈받고서 아무데나 올려도 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때마다 대법원까지 가서 "법관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뜻인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사건 셋
친딸 성폭행 `반인륜 아버지' 징역5년 [연합뉴스] 2008.3.23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80323050110873&cp=yonhap&RIGHT_COMM=R7


이 사건이 결정적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패륜적 행동에 대한 중형"은 겨우 5년이라는 뜻이다.

법을 잘 아는 분들은 "5년이면 중형이다"라고 하겠지만, 이는 "비겁한 변명"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성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에는 바로 이러한 것들이 모두 작용한 것이 아닐까?

몇몇 사회적으로 문제되었던 사건들의 결과를 들어봐도 모두 '피해자만 피해를 더 입고, 가해자는 그냥 떵떵거리고 사는' 식의 결론이었다. 입에 담기도 싫다.

결국, "아무리 심해도 5년"이라면, 대체 누가 무서워할까? 법률에 문제가 있다면, 이번 국회의원 후보님들이 좀 공약으로 내세우면 안될까? 적어도 이 나라에 성범죄는 단죄를 하겠다고 말이다. 그 이유는 그분들이 더 잘 알것이다.

아.. 생각해보니, 국회에서도 성추행에 대해 워낙 관대하고, 그걸 하시고도 아주 떳떳하게 국회의원직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그래서 자기가 잡혀 들어갈까봐 법을 강화하지 않는 것인가?


성범죄에 대한 형량을 대폭 올려라!

나는 대체 이유를 알 수 없다. 성범죄에 대해,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의 형량을 팍팍 올려라. 아마 이번에 국회의원 공약으로 내세우면 당선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범죄는 재범이 많기 때문에 전자 팔찌도 채우는 등 여러가지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하지만, 재범을 막는데 힘쓰지 말고, 처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데 온 힘을 기울여라.

성범죄의 피해자는 단순한 피해가 아니라 그 영혼까지도 파괴된다. 한 인간의 일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극악 무도한 범죄다. 그런데, 범죄자가 5년후에 밖으로 나와서 버젓이 돌아다닌다고?

전세계적으로 분명히 처벌을 강화하고 있을터인데, 우리나라는 어째 계속 더 봐주자는 쪽으로 가는 것일까?

세개의 기사를 나란히 접하고나니, 머리가 아프다. 희망이 없는 것일까?


미디어 한글로
2008.3.23.
media.hangulo.net


※ 이 글은 2008년 3월 27일자 경향신문 29면 "오피니언" [블로그속으로]에 소개되었습니다. (조금 정리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경향신문에서 보기] [네이트에서 보기] [네이버에서 보기] [다음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