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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걸리버 여행기-배명훈의 [타워], 촛불시위에서 아고라까지

21세기의 걸리버 여행기
배명훈의 [타워], 촛불시위에서 아고라까지


걸리버 여행기를 아십니까?

걸리버 여행기는 비록 소인국과 대인국편이 아동용으로 각색되어 많이 알려졌지만, 아주 신랄한 정치풍자 소설이다. 원래 소인국과 대인국외에도 "하늘을 나는 섬" 즉 "천공의 섬 라퓨타"도 걸리버 여행기의 한 부분이며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해 만화로 꾸며졌다. 물론, 다른 이야기로..) 말이 사람 노릇을 하는 '휘넘(Houyhnhnm)'나라에까지 크게 네가지 나라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참고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109162)

재밌는 것은 천공의 섬 라퓨타 이외에도 검색엔진 "야후(Yahoo)"가 바로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말의 나라"에서 나오는 가축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바로 "인간"을 거기서는 '야후'라고 부른다.

이렇듯, 걸리버 여행기는 18세기의 신랄한 정치와 사회현실을 일종의 SF에 기대어 풍자한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완역본이 나와 있으니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나는 중학생때 읽고는 얼굴이 화끈거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왤까? ^^)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작가 '배명훈'의 연작소설 '타워'는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소설이라고 감히 칭한다. (내 맘대로. ^^)

타워 - 674층의 건물 '빈스토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설정은 아주 단순하다. 674층, 높이 2408m의 어마어마한 고층빌딩. 이름은 '빈스토크'. 동화 재크와 콩나무에 나오는 그 콩나무의 이름이다. 그런데, 인구 50만의 이 큰.. 혹은 작은 건물이 하나의 '나라'다. 아래층에는 국경도 있고, 군대도 있고 그렇다. 사람들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반이 넘는 4천km이상의 복잡한 엘리베이터 노선을 타고 이동한다. 한번에 1층부터 674층까지 가는 노선은 없다. 중간중간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그 복잡함 덕분에 '가이드북'까지 존재한다. 물론, 유료라서 1일 이용권 같은 그런 개념도 있고, 단체 할인도 된다.

뭐, 이정도면 대충 감 잡았을 사람 많다. 에이.. 거기서 뭐 별일이나 나겠어? 그래. 하지만, 별일이 난다.

숨어 있는 정치 코드를 찾아서

이미 이 책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감을 밝혀 놓았으므로, 굳이 그런 흐름을 따르지 않겠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읽고, 내 나름대로 찾아낸 그런 정치코드를 한 번 찾아보겠다. 이 정치코드는 어쩌면 작가 조차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실제 사건'이 이 글을 쓴 후에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보다는, 작가의 통찰력이 그토록 뛰어났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말자. ^^

이 책은 여러개의 짤막한 단편들을 엮어 놓은 것이다. (듣기엔 알라딘에서 연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단편들과의 연관관계는 그리 크지 않지만, 빈스토크라는 거대한 건물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렸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굳이 에피소드별로 구분해서 정리하지는 않겠다.


표현의 자유, 그리고 억압

비판을 해야 할 사람들이 비판을 그만두자 비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비판을 시작했다. 그러자 경비대가 나서서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를 억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다른 규칙이 강화되었다. 321층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다음 날, 광장 사용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들이 층간소음법 위반으로 경비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수직운송 업체와 정부의 관계를 조롱하는 연설을 한 작가 몇 사람은 음란성 시비에 걸려 지면이 끊겼다. 시 정부에서 지시한 일이 아니었다. 딱 그 정도의 일을 할 권한이 있는 누군가가, 누가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한 일이었다.

배명훈 [타워] 44쪽 <자연예찬> 중에서

대한민국은 한 번도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를 억압한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 있는 집회의 자유를 어느 누가 감히.. 단지, 다른 "규칙"에 의해서 불법 집회가 되었다. 촛불집회가 그랬고, 그 이후 진보성향의 모든 집회가 '불법'으로 낙인찍혔다. 시위를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사받기도 하고, 어느 고등학생을 수업중에 끌고 가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묘한 혐의를 씌워서 지원을 중단했고, 작가들은 '주요한 언론(장자연 사건때부터 이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에서 절대 글을 청탁받을 수 없었다. 라디오 방송, TV방송에서도 쫓겨났다. 

수사는 '딱 그 정도의 일을 할 권한이 있는 누군가'가 '누가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했다. 그리고 그는 영광스러운 승진을 하게 되었다.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안받은 인간이 기병 돌격을 정면에서 받아내려면 최소한 천 년은 걸릴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나쁜 일이 아니야. 단지 불필요한 충돌을 막기위한 일이에요. 상처받을 일은 없을거야. (중략)

형부. 천년은 걸릴 거라면서요. 백 일도 안 걸렸네요. 거봐요. 그 사람들이 그저 돈 받고 앞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니라니까요. 기병대가 달려오는데도 안 물러났다면서요. 신문에서도 그랬어요. 진짜 돈 받고 하는 전문 시위꾼이면 그렇게 목숨 걸고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서 있었겠냐고. 누가 봐도 그냥 반전시위잖아요.

배명훈 [타워] 162쪽 <광장의 아미타불>

촛불시위대를 전문 시위꾼으로 매도하고, '폭력 시위대' (시위대는 시민에 속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다.)를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게 폭력이든 뭐든) 막아야 한다는 것. 이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그러면서 이런다. "불법 저지른 놈이 나쁜놈. 선진국에선 폴리스라인 넘으면 총으로 쏜다" 그런데, 그들은 항상 이 사실을 숨긴다. 불법으로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경찰이고, 외국에서는 적어도 집회의 자유는 보장한다. 총으로 쏘는 경우는 총기소지가 합법으로 된 나라에서나 극단적일 경우에나 하는 것이고.. 시위때마다 발포하는 나라가 어딨나? (그 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 싶은건가?)

어쨌든, 기병대로 안되니, 빈스토크에서는 '아미타브'라는 인도 코끼리를 사용한다. 아! 아미타브라니. 바로 인도 영화계의 신! 아미타브 밧찬(Amitabh Bachchan)에서 따온 말이 아닌가? 물론, '아미타불'의 어원과도 일맥상통하니, 아미타브를 빈스토크에서는 '아미타불'이라고 부른다. 인도 영화에 조예가 깊은 배명훈의 멋진 명명법이라 하겠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서 공개하지 않겠다. 단지, "물대포"를 쏘기 위해서, "색소나 최루액을 넣은 물"을 준비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모습이다. 최근에 "인체에 무해한 최루액"을 쌍용차 현장에 뿌린다는데, 그 무해한 최루액이 살을 상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난감해진다. 아.. '시민'에게만 무해하다는 소리였나? (다시 말하지만 '시위대'는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것이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다.)


사람을 죽여도 책임질 사람 없어 - 용산참사


197층 북쪽 창문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수직운송 체계 재정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재개발 구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죽은 사람은 열흘째 그 구역을 점거하고 농성 중인 무리들 중 하나였다. 그날 저녁에 경비대가 진압을 강행했는데 그 와중에 사고가 발생한 모양이다.

뭐가 어찌 됐든 진압하러 들어갔는데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실패한 게 아닌가 싶었다. 빈스토크 경비대가 무슨 인질범 소탕하러 들어갔다가 인질까지 죽여버린 러시아 군대도 아니고, 변명의 여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잘못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배명훈 [타워] 65쪽 <자연예찬>중에서

대한민국의 어느 재개발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 더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기록의 중요한 부분을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내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수사를 한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검찰총장 자리에 앉을 뻔 했다가, 누군가로부터 금품을 오랜기간 받은 '스폰서'관행과 더불어,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인 대통령마저도 돌아앉을 '거짓말' 때문에 낙마했다. (아마 곧 다른 높은 자리 하나가 주어지지 않을까싶다.)

어쨌든, 사람이 죽었는데, 잘못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 시위대의 잘못이라고 몰아붙인 것이 정부의 의견이었다. 글쎄.. 정말 그렇다면 왜 그리 숨기는 것이 많은지, 왜 유족의 동의도 안받고 서둘리 부검까지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한민국 경찰이 인질범 소탕하러 들어갔다가 인질까지 죽인 어느나라 군대도 아닐텐데.



희망을 찾다 - 인터넷과 공공의 선

빈스토크에서는 우편물이 공짜로 배달되거든요. (중략) 그저 수신지 주소를 잘 보이게 쓴 다음 근처 엘리베이터로 가서 파란 우편함에 넣으면 그만이거든요. (중략) 그러면 우편물이 저절로 목적지를 찾아가요. (중략)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파란 우편함을 먼저 확인해보고 자기가 가려는 층에 해당하는 우편물이 있으면 그냥 들고 타는 거예요. 그러고는 목적지 엘리베이터 옆 수신함에 우편물을 꽂아두고 가요... (중략)

의외로 배달사고가 안 나요.

배명훈 [타워] 85쪽. <타클라마칸 배달사고>

그리고 작가는 다시 다음의 에피소드를 꺼내든다. 아.. 이건 잘못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겠다. 어쨌든, 인터넷의 '순기능'에 대해서 굳은 믿음을 보여준다. 공공의 선. 인터넷 성악설에 빠진 한나라당 미디어법 관련자들이 읽으면, 아마 "이런 뻥이 어딨어?"라고 할 정도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가난한 대학생이 학비를 벌기위해 100만개의 점(dot)을 인터넷에서 팔았다.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100만달러를 손에 넣었다. 아직도 그 홈페이지는 살아 있다. (http://www.milliondollarhomepage.com/ )

바로 이 이야기가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최근에 있었던 인터넷 미담까지 모조리 생각났다. 인터넷의 순기능에 집중하면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언제나 '역기능'에 중점을 맞추고 거기에 관련된 용역을 주니, 맨날 '인터넷은 사회악'이란 식의 정책만 나오는 것이다.


수직과 수평주의 - 보수와 진보, 위계와 네트워크

그 둘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선이 내 눈에는 그렇게 선명해 보이지가 않았어. 내 눈에는 그저 점선일 뿐이었고, 중간에 걸친다고 큰일이 날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수직주의자라는 사람들은 '520층 연구'를 결국 군내 반입 금지 도서로 지정하더라고. 저쪽에서도 마찬가지였어. 수평주의자들도 나를 더 이상 강연장에 들여보내지 않았으니까.

배명훈 [타워] 132쪽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이 큰 건물에는 '수직주의자'들(우파, 보수)과 '수평주의자(좌파,진보)'들이 있다. 물론, 정권은 수직주의자의 몫이다. 더 선거구를 작게 만들어서 더 쉽게 지배하려는 그런 생각을 지닌 수직주의자들. 결국은 수평주의에 대한 책을 '군내 반입 금지'로 만든다. 베스트셀러이고 여러가지 상을 많이 받은 수십권의 책들을 '불온서적'이라고 해서 군내 반입을 금지한 대한민국 국방부와 비슷하다. 물론, 국방부는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딱 그 정도의 권한을 가진이"가 스스로 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 일을 한 분은 얼마 안있어서 축복 받으시리!)

아고라를 파괴하라 

수평주의자들이 매번 승리하는 선거구에서 이기기 위해서 수직주의자들(기득권, 보수)은 묘한 연구를 진행하고 실천에 옮긴다. 바로 그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맛은 없지만 저렴하고 편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인 '카페 빈스토킹'에 대항해서 '퀸즈 테라스'라는 체인점을 들인다. 엄청난 가격 공세를 퍼붓는통에 퀸즈 테라스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에나 짜릿해하고 매스미디어에 길들여진다.  그리고 삶이 각박해진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배명훈 [타워] 부록 <카페 빈스토킹> 요약)

이 이야기에 나오는 '카페 빈스토킹'은 바로 아고라를 칭함같다. (작가가 아니라도 난 상관없다. ^^) 정부는 아고라를 죽이기 위해서 무던한 애를 썼다. 많은 사람들을 잡아서 조사하기도 했고, 미네르바를 무작정 잡았다가 1심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무죄라니!) 그렇지만, '다음'에 대한 묘한 여러가지 압력 덕분에 아고라는 메인 화면에 글이 노출되는 것이 막히고, 구석으로 처박혔다. (정부에게는) 다행히 아고라는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 되었다. 다음 번 개편때는 어디로 더 처박힐지 알 수가 없다.

이 밖에도, 타워에는 '대량 살상무기'를 찾는다고 하면서 무차별 폭격을 가한 미국도 비판하고 있고, 무조건 '아랍인=테러리스트'로 몰고가는 행태도 비꼰다. 요즘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국민들의 군사지식을 높여주기 위해서 자주 쓰는 ICBM은 명품 가방의 디자인으로도 나온다. (난 아직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를 모르겠다. 무섭다는 것인지, 응징해야 한다는 것인지,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지.. 혹시 아는 사람?)


술술 익히는 책, 읽고나면 술을 부른다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칠 수 없을 만큼, 배명훈의 '타워'는 흡인력이 강하다. 남녀를 오가는 자유로운 필체. 수많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다. 심지어 영화배우 일을 하는 '개'까지 말이다.

술술 익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읽으면서 자꾸만 빈스토크와 대한민국을 짝짓기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소주 한 잔을 부르는 책이기도 하다. 읽을때는 낄낄거리며 읽었지만, 읽고나서 참으로 허탈해지는 바로 그런 기분 말이다.

17세기 걸리버 여행기를 읽은 당시의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도 이렇지 않았을까? 아마 그들은 이렇게 외쳤을거다. 이런 '야후'같은 정치인 놈들!

그래, 나도 외친다. 이런 빈스토크 수직주의자 같은 '정치인'님놈들! 정신 좀 차려라. 멍!멍!

미디어 한글로
200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