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에 없는 것들
봉하마을 가는 길엔 "뚫린 길"이 없다
봉하마을 가는 길은 온통 막힌다.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히기 시작할 때 쯤이면, 일단 운전자는 차를 '버릴 곳'을 찾든지, 진영 공설운동장까지 갈 작정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내리게 하는 것이 좋다. 걸어서 한시간 반 남짓이면 충분히 봉하마을로 갈 수 있다. 너무 오래 걸린다고? 어차피, 2.8km 지점 앞의 삼거리 안으로는 일반 차량은 못들어간다. 공설운동장에 차를 세운 운전자 걱정은 마시라. 오히려 더 편안히 '셔틀버스'를 타고 봉하마을 입구 깊숙히까지 들어올 것이다.
봉하마을엔 '아방궁'이 없다
조중동의 세계에 살다 온 사람들은 봉하마을에 들어서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분명히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초호화찬란한 아방궁이 들어서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온 사람들은 모두다 이야기한다. 이런 깡촌의 초라한 건물들을 가지고 아방궁이라고 부른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말이다.
오히려, 좁은 진입로부터 시작해서, 논에서 풍겨오는 자연의 '똥'냄새가 이미 이곳이 아방궁과 거리가 먼 곳임을 알게해준다. 하지만, 오늘도 이명박 대통령은 조선일보를 보면서 '여기 조문가면 아방궁 구경하는거야?' 라고 주절거릴 것이 뻔하다.
봉하마을엔 '육개장'이 없다
밤을 새우며 빈소 근처에서 서성거리지만, 이곳엔 육개장 한 그릇이 없다. 아니, 오늘 아침에 잠시 있었는데, 그것도 금세 떨어졌다. 그래서 대신 '육개장 사발면'을 공급했다. 그것도 금방 떨어졌다. 그리곤 다시 밥과 국을 대접했는데, 그 밥을 먹으려면 최소한 30분 이상은 줄을 서야 했다. 밥을 기다리는 줄이 조문을 기다리는 줄보다 늘어나는 기현상도 있었다.
어느 초상집이 이렇게 초라할까 싶을 정도다. 비에 젖은 바닥에 앉지 못하고,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싸는 폼으로 엉거주춤 사발면 한그릇을 비운다. 그래도 감사하다. 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니까.
국민장이니 뭐니 하는데, 오히려 내 친구 할머니의 초상집보다 없는게 더 많은 초라한 장례식이다. 대체 국가에서는 무엇을 제공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생색'을 제공하는지도...
봉하마을엔 '파는 물'이 없다
봉하마을에서 '물'은 공짜다. 배후세력이 누구냐고? 그걸 물어보는 당신의 배후 세력이 알고싶다. 그리고, 임시 분향소인 봉하마을 노사모 기념관에 가면 커피도 공짜로 먹을 수 있다. 배후가 누구냐고? 거기 들고 있는 커피 내놔라.
봉하마을엔 '화투판'이 없다
초상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투판이 없다. 하긴, 앉을자리도 변변찮은데다가 이제 밤이 되어서 보급품(?)도 거의 없다. 물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지만, 어디선가 조금씩 떡이 나오고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으로 간신히 요기를 한다.
화투판이 벌어지려면 안락한 자리(?)가 급선무인데, 언제부턴가 보이기 시작한 스치로플 자리로는 안락하지 못하다. 아니, 여기서 감히 화투장을 꺼내는 사람도 없거니와, 육개장도 없는 곳에 화투를 제공할리는 만무하다.
봉하마을엔 '주정부리는 취객'이 없다
이곳에서 음주는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꾸만 흐르는 눈물, 자꾸만 타들어가는 속을 달랠 길은 술 밖에 없다. 어디선가 구해온 술을 마신 분들이 울분을 토한다. 취객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자신이 못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그 취객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주정을 부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또 없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방금 어떤 분이 주정하고 가셨다. ㅠㅠ)
봉하마을엔 조중동 기자가 없다
여기 어느 기자도 '조중동' 기자임을 밝히지 않는다. 솔직히 기자들끼리는 모두 안다는데, 여기 조중동 기자 많댄다. 단지, 다른데선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조중동' 스티커 붙인 카메라만 없을 뿐이다. 스스로 몸을 사리는 모습 또한 조중동스러우며, 나중에 장례식을 일컬어 '초호화 삐까뻔쩍' 장례식이었음을 왜곡보도할 그들의 정신에 미리 고개를 숙여드린다. (사발면 두개 먹었으면.. 아마도 허례허식에 찌든 장례식이 될 뻔했다..ㅠㅠ)
봉하마을엔 '촛불을 두려워 하는 무리'가 없다
이상하게 여기 경찰은 촛불을 들어도 아무도 저지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누가 샀는지 알아봐야 할' 촛불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마치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려는 듯, 곳곳에 촛불이 켜진다. 이곳에선 아무도 촛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촛불을 켰다고 잡아가지도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란 곳에서는 분향을 하다가 촛불이라도 하나 들고 나서면 잡아가려고 윽박을 지른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에 온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무시무시한 촛불'이 난무하는 이곳에 오시려면 청심환 한 박스를 드셔야 할 듯 하다. 아니, 촛불을 두려워하는 무리들은 어차피 봉하에 와도 쫓겨나더라.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은 반드시 대낮에 오길 권한다. 아차차... 이곳에는 낮에도 촛불이 켜져 있다. 어쩌지.. 아하! 물대포 차 앞세우고 오시라. 얼마든지 맞아줄 사람이 이곳엔 참 많다.
하지만, 봉하마을에 없는 가장 큰 존재는...
이 시골 마을을 환하게 비추어주던 '그 분'이 안계신다.
하늘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하루종일 울먹울먹 거리며 울다 말다를 계속했다. 이제는 조금 나아졌나 싶더니, 뿌연 안개가 갑자기 급습한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노무현 대통령의 입관식이 거행되고 있다고 한다.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각. 권양숙 여사의 초라한 휠체어가 내 앞을 지나간다.
다 없어도 좋다.
그깟 물 사먹으면 되고, 그깟 육개장은 나중에 먹어도 된다. 촛불이고 뭐고 다 없어도 좋다.
하지만, 봉하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그 분'이 없다. 대체, 누가 이런 것인가. 누가 대체 이 분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하지만, 이곳엔 '그 분'이 있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생생한 그 분의 연설이 흘러나온다. 금방이라도 화면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한 그분의 이야기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나온다. 금방이라도 '짠~'하면서 거짓말처럼 나올 것 같은 '그 분'이 있다.
그리고, 그 분은 이곳 수십만명의 마음속에 조금씩 담겨서 전국 각지로 다시 퍼져나갈 것이다. 어느 바이러스보다 더 강한 전염성을 가진 바로 '그 분'의 바이러스로 말이다.
▲ 이 앞에서 기다리면, 그 분이 버스 몰고 오실 것만 같다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바보 바이러스'다.
바로 우리의 '희망'이고 '꿈'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봉하마을에서...
미디어 한글로
2009.5.25 새벽
http://media.hangul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