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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헛발질 하기

쇼생크 감옥 보다 못한 군대, 13년 전과 똑같다

쇼생크 감옥 보다 못한...군대 13년 전과 똑같다
고장난 국방부 시계, 베스트 셀러도 '불온서적'



대학 교양수업 교재까지 '불온서적' 분류하는 국방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하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서 하도 만은 '어처구니 상실'이 되어서 크게 놀랄바는 아니다.


국방부, 베스트셀러·대학 교양교재 '불온서적'‥군내 반입 금지
[MBC] 2008.7.31

최근 국방부 불온서적 목록에 수 십 만 부 팔린 베스트셀러와 대학 교양 교재가 들어갔습니다.

고장난 국방부 시계가 거꾸로 가도 너무 뒤로 세게 돌아갔습니다.
김연석 기자입니다.

지난해 발간돼 십만 부가 팔린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많은 언론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의 위협과 위선을 지적한 이 책을 국방부가 반미 서적으로 분류해 부대 반입과 독서를 금지시켰습니다. (이하 생략)


'나쁜 사마리아인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북한의 우리식 문화' 등의 책이 줄줄이 걸려들었다. 이거 어쩌나, 이 책을 산 모든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서 구속시켜야 하는것 아닌가?

어쨌든, 수많은 욕을 수많은 사람들이 했으니, 나는 욕을 좀 삼가야겠다. 이런 #@#!$#@!$!%!%!@

그런데, 내가 13년전에 겪고, 제대후에 써 놓고, 여태 내 홈페이지에 남겨놓은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니, 지금이나 그때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군대였다.

아래는 그 글의 전문이다.

쇼생크 보다도 못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쇼생크 탈출'을 처음 보았을때의 감동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처음 교도소를 들어올때의 모습이나 익숙하지 못한 그곳에서 적응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이 '군대'란 곳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앤디가 나쁜녀석들에게 당했던 그 고통은 못된 고참에게 당하는 것과 똑같았고 그 고통에서 헤어나기 위해 더 높은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도 그랬다. 하지만 그 결과가 전혀 다른것이 앤디는 고통에서 헤어나는데 성공했지만 난 실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앤디가 '도서관'을 확장하는 부분이니까.

그 영화를 보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어떤 고참 하나가(불행히 내가 저주하던 녀석이었다) 갑자기 의견을 냈다. "야, 휴가나 외박 갔다가 오는 사람은 무조건 책 한권씩 사와라!" 의견이라기 보다는 '명령'이었으니 아무도 반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게 그렇게 반가운 소식일 수 없었다. 휴가나 외박을 다녀올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소대원들에게 나누어줄 '먹을거리'를 사는 것이었다. 어느정도 양을 사야 미움을 받지 않는지 알기도 어렵고 도대체 어느 메뉴를 골라야 하는가도 고민의 하나였다. 거기에다 몇몇 고참에게는 담배나 초콜렛을 '바쳐야'하므로 거기에 드는 돈은 적게는 3만원에서 많게는 5만원까지 들곤했다. 그런데 그런 모든것을 없애고 만원도 안되는 책 한권을 사오라니 나로서는 너무나 뛸듯이 기뻤다.

커다란 책장 하나를 구해서 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 명령이 떨어지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명령의 강도는 더 커져서 일단 의무적으로 책을 두권씩 내라는 것이었다. 소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기본적으로 책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도대체 이등병이나 일병이 책을 어떻게 가지고 있겠는가. 만약 지정한 날짜 안에 책을 모으지 못하면 '그녀석'의 특기인 '집합'이 걸려서 머리와 땅이 만나고 엉덩이와 야삽이 만나는 의식(?)을 거행할 것이 뻔했으므로 우린 구걸을 해서라도 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렇게 모아진 100여권의 책과 그 주에 휴가자나 외박자가 가지고온 책들을 합해서 드디어 소대 도서관은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관리를 맡은 사람들은 책을 관리하는데 전혀 의욕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몇년 몇월 군번' 하는 식으로 무조건 '책임군번'을 떠맡겼으니 그런 의욕이 어디서 생겨나겠는가. 생활하기도 고달파 죽겠는데 귀찮은 일이 하나 더 생겼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달 정도가 지나가고 책 관리를 '내 군번'이 맡을 차례가 되었다. 난 뛸듯이 기뻤다. 군대에 처음 들어와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눈앞에 놓인 신문을 읽지 못하게 하고 책을 펼쳐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었다. 1년이 훨씬 지나야만 그 '권리'를 얻게 된다. 이런 '쌍팔년도'의 군대법이 아직까지 존재했다. 그러기에 책에 대한 나의 갈망은 자유에 대한 갈망보다 더 컸다.

먼저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마다 관리번호를 따로 부여하고 책 한권마다 그 책의 내력을 알 수 있도록 '제목, 글쓴이, 기증일, 기증자' 등을 썼다. 거기에다 책 목록표와 책 관리대장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앤디 흉내'는 시작되었다.

앤디가 했듯이 먼저 '좋은 책'을 확보하는게 급선무였다. 신문등을 참고해서 베스트 셀러나 내용이 좋은 책 등을 선정하여 휴가자나 외박자들에게 알려 주었고 '영웅문'이나 '삼국지'등의 대하소설류도 완전히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책들을 미친듯이 읽어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는 아무리 할일이 없더라도 절대로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금기처럼 여겨지던 그때였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앉아서 조는것은 되도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니. 난 과감하게 책을 빼들고 읽었으며 간부들에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하루에 한권씩, 또는 두권씩 읽다보니 얼마 안가서 책장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행스러운 일은 '품격있는' 책만을 읽는다는 잘못된 독서습관 덕분에 눈밖에 두었던 책까지 읽었던 것이다. '소설 영웅문'을 밤새워 읽으면서 무엇이 '재밌는' 이야기인지 알았고 '삼국지'를 완독하면서 내가 과거에 이 소설을 읽었다고 자부한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련은 곧 닥쳐왔다.

군대에서 책을 소유하는 것은 '규정위반'이었다. 물론 '공부에 관련된 책'을 보는것이나 '보안성 검토가 된 책'을 보는 것쯤은 그나마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런데 '보안'이라는 것이 참으로 우스운 것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삼국지'가 금서로 지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책 내용중에 폭력성이 짙은 것이나 음란 퇴폐성이 있는 것도 금지한다고 되어 있댄다. 그 밖의 세세한 내용은 '비밀'로 지정되어서 관련된 사람 이외에는 도대체 규정이 뭔지도 알 수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금서'목록이 작성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것도 '비밀문서'인데 그것을 담당하는 간부조차도 잘 모르고 있댄다. 결국 '어림짐작'이나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서 금서가 되고 안되고였다.

우리 생활을 책임진다는 '인사계'는 어느날 우리가 모아놓은 책들을 모조리 압수해갔다. 그 이유는 '보안성 위배'라는 것이었다. 책을 어떻게 모았는가에 대해서는 미리 입을 맞추어 놓아서 말썽될 것이 없었지만 (물론 군대에서 돈을 모아서 무엇을 하거나 휴가 복귀시에 무엇을 가지고 오는것은 규정 위반이다) 그놈의 '보안'이 문제였다.

갑자기 텅 빈 책장을 보았을때 내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욕설은 '이런 쇼생크 감옥보다도 못한 군대라니!'였다. 장병들의 교양을 높이기 위해서 책을 사다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보안 운운 하면서 책을 압수하는 것일까. 너무나 흥분해서 난 화를 가라 앉힐 수 없었다. 관련 규정을 찾아 모조리 다 뒤졌지만 신통한 부분이 없었다. 결국 그보다 더 높은 간부의 힘을 빌어 책은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 책은 수난을 겪었다.


내무생활 상태를 검사한다는 '내무검사'는 실제로 청소검사다. 거기에 소지품 검사와 속옷검사가 추가된다. 어쩌다 한번씩 있는 내무검사때 책은 모조리 상자속에 넣어서 산으로 피신을 시켜야만 했다. 특히 보안상태를 점검한다는 '보안감사'때는 땅속에 파묻어야만 안심이 되었다. 어쨌든 책이 피난을 갔을때는 사태가 잠잠해 질때까지 기다리느라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달까지 책을 보지 못했다.

우습게도 군대에서 보급되는 책중에는 수준이하로 야한 3류 소설도 끼여있다. 물론 '보안성'이 검토되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보안에 위배되므로 숨기고 봐야 한다. 만약 적발되면 영창에 가야한다.

"오, 쇼생크 보다도 못한 이곳이여! 난 널 저주하노라!"

한글로.

1996년 9월 29일


10여년 전의 일이 지금의 군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니, 정말 기가막힐 노릇이다.

군대 편해졌다고 욕들한다. 특히, 고위층들은 욕을 더 하더라. 그런데 왜 자식들은 군대에 안보내려 그렇게 애쓰시는지 잘 모르겠다.

군대 가기 싫은 것은, 이런 말도 안되는 사태를 벌여 놓고도 뻔뻔하게 "아무 문제 없어"라고 고개들고서 우기는 사람들이 군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는 폐쇄집단 이라고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장병은 21세기인데, 이명박 정부와 이명박 국방부는 아무래도... 19세기 말같다.

참..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2008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선" 이벤트를 열고 있다. 정말 재치 만점이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이 "불온도서"가 날개 돋힌듯 팔리고 있댄다.


정말이지, 너무 너무 눈물이 난다.


미디어 한글로
2008.8.1
media.hangul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