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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헛발질 하기

빨간펜 지도 받은 검찰의 굴욕 - 한명숙 총리 12차 공판 참관기

빨간펜 지도 받은 검찰의 굴욕
한명숙 총리 12차 공판 참관기




연일 계속된 법리 논쟁에 사법 연수생들 몰려들어

어제와 오늘의 한총리 법정은 법정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예전에 즐겨 봤던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연상케했다. 법정에서 서로 근거 법전과 조항을 내세우며 치열하게 대립했고, 공판 참관하는 기자들과 일반인, 그리고 마침 법원에 실습을 나온 사법 연수생들도 열심히 필기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는 2007년 개정된 형사소송법 덕분이다. 그 전까지는 피고인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증거였지만, 개정된 이후에는 철저히 "증거와 증인"을 중심으로 신문하고, 부가적으로 피고인 신문을 하도록 바뀐것이다. 즉, 피고인 신문의 경우에는 위증하지 않겠다는 선서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제 맘껏 곽사장이 검찰 뜻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의 법정 해설을 도둑질(^^)하자면, "증인은 증언을 하고, 피고인은 주장을 한다"로 명쾌하게 떨어진다. 재판부는 피고인 신문을 중요한 증거로 보는 것이 아니고 참고적으로 보는 절차다.

어쨌든, 조금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1) 피고인 신문은 검사와 변호인이 차례로 한다.
2) 이때, 피고인은 전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

일각에서 "악플"에 떠도는 "묵비권"이니 하는 것은 "진술거부권"이 정확한 용어인 듯 하다. 또한, 이것은 자신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떠나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이미 PD수첩 재판때 선례있어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굳이 피고인이 말을 안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라도 대부분 검사의 신문에 응한다. 하지만, 지난 PD수첩 사건때는 이러한 진술 거부권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서 검사측과 변호인측의 피고 신문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검찰은 합의에 의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한총리 변호인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치열한 법정 공방속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한 "진술거부권"을 사용했다. 이번 사건은 특히, 검찰이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면서 시작된 '정치재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현재 시점에서 그렇게 흘린 피의사실은 대부분이 허구에 가깝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검찰은 예민하게 반응했고, 재판부의 법해석에 계속 반기를 들었다.

재판부는 "가장 정치적인 이 재판을 가장 법률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는 소회를 남겼다.

재판부의 해석은 거의 모든 재판부가 하고 있는 재판 실무 지침서에 나온대로 전체 진술을 거부하는 "포괄적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경우에는 그 절차를 생략하고 다음 절차로 넘어간다는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원칙적인 판단이었다. 그래서 두 가지 중재안을 냈는데,

1안) 검찰의 피고인 신문은 생략하고, 변호인 신문시에 하나하나의 사안에 대해 검찰 반대 신문 기회 주겠다. 
2안) 변호인측도 신문하지 말고, 피고인의 진술을 듣는 방식으로 한다. 이때 변호사의 조력이 가능하다 

오늘(4월1일) 검찰은 검찰 총장까지 회의를 한 끝에.. 그냥, 아무것도 안받고 "무조건 우리 신문하게 해줘"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대체, 대답을 전혀 안할 피고인에게 질문을 주르륵 던진다고 해서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찾는데 무슨 도움이 되나? 완전히 쇼 아닌가? 혹시, 그 피고인 진술의 목적이 "조중동 기자들이 받아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가? 이제는 더 이상 언론에 흘리면 그 "빨대"가 노출될까봐?

검찰은 우리와 상황이 다른 일본의 예를 계속 들면서 논리를 폈지만, 우리나라 법원실무를 적은 책자를 따르겠다는 재판관의 논리를 넘어서긴 힘들어보였다. 여기는 한국이다.

변호인측이 계속 양보하면서 중재에 응하려고 했지만, 재판장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검찰측은 피고인 신문사항을 제출하라. 변호인측은 그것을 검토해서 이의있는 조항을 말하면, 재판부에서 질문에 대해서 결정해 주겠다"

빨간펜 선생님이 된 재판부, 초딩이 된 검찰의 굴욕

아무래도, 검찰은 위의 결정을 제대로 못알아듣고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나보다. 재판장의 공판지휘권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던 검찰이 몇개의 검토가 들어가면서 항의를 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요즘 검찰의 이해력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쨌든, 수백개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 하나, "통과, 삭제, 수정" 이렇게 세가지의 유형으로 검토가 되었다. 초반에는 거의 모든 질문이 삭제되었다. "곽영욱 피고를 아는가?"라는 5천만이 모두 아는 사실은 질문으로 가치가 없는데도, 이런 수준의 질문이 많았다.

또한, 법률에서 제정하고 있는 유도, 강요, 모욕적인 신문은 모두 퇴짜를 맞았는데, 모욕적인 부분과 유도신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모두 수정또는 퇴출되었다.

이렇게 간추리고 나니, 온전히 남은 질문은 10% 정도에 불과한 듯 했다. 20% 정도가 삭제된 것 같고, 나머지는 유도신문 등이 되지 않도록 모두 고쳐졌다.

그 과정에서도 부장검사는 불만을 계속 토로했다. "이게 누구 신문이냐, 이렇게 하면 신문이 되겠냐"는 식으로 저항했지만, 재판관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한것은 검찰의 판단이었으니... 누굴 탓하랴.

빨간펜 선생님의 지도는 몇시간이나 계속되었다. 검찰은 그 와중에서도 재미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수정하는 내용을 계속 읊었다. 역시 정치검찰 다웠다. 그나마 아침에 증거 제출시에, 서면에 모두 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읊어주는 서비스로 아침 신문을 장식할 수 있었다. 무조건적인 의혹제기... 검찰의 전매특허였다.

구연동화 시간인가? 검찰의 원맨쇼, 무위로 끝나

저녁 시간도 없이 계속된 빨간펜 지도는... 한총리 아들 문제에서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7시 40분에 속개된 재판. 이제 검찰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구연동화"시간이 다가왔다.

한총리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 했죠? 피고인은 잘 보세요.." 뭐 이런 식으로 하면서 검찰은 "혼자서도 잘 신문해요"를 했다. 질문을 퍼뜨리는 것이 목적인 검찰은, 기자들이 받아적을 수 있도록 충분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물었다. 아니, 물어본게 아니지. 그냥 읊었다.

심지어 부장 검사가 갑자기 마이크를 뺏더니, 묻지 않기로 한 부분을 재판장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마구 읽어댔다. 재판장의 허탈한 모습... 어제 곽씨가 MBC 2580에 무단으로 나가서 화가난 것과 비슷했다. 검찰은 이제 최소한의 룰마저 지키지 않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약 1시간가량 검찰은 20쪽의 문서를 읽었는데, 그중 10쪽이 골프장에 관한 것이고 5쪽이 유학에 관한 것이었다. 이 재판의 주요 공소사실에 대한 것은 5쪽에 불과했다. 이 비율만 보더라도 손쉽게 검찰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만하다.

어쨌든, 빨간펜 재판장님께서 일일이 수정해주신 "신문사항"을 구연동화 실습하듯이 혼자서 잘 읽은 검찰, 수고 많았다.

간단한 피고인측의 해명, 3000불때문에 미국 국토안보부까지 동원한 검찰?

오늘 이대로 끝나면, 검찰의 구연동화를 받아쓸 언론이 일방적으로 동화를 쓰게 되므로, 피고인측은 빠르게 해명을 했다. 검찰이 주장한대로 학비에서 3000불 정도가 차이났는데, 이는 카드로 결제한 부분이 누락된 것으로, 다시 서류를 냈다. 문제는 이거다. 이 3000불을 피고인측이 숨긴다고 해서, 검찰의 의혹이 없어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피고인측이 고의적으로 이걸 누락할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험악한 표현까지 썼다.

며칠전에 골프샵 사진을 일부러 차량으로 가린 상태에서 찍어서 제출해서 재판부와 피고인측을 속이려 들었던 검찰로서는 너무나 이해 안가는 행동이다. 그때 피고인측은 일체의 항의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0불이 차이난다고 미국 국토안보부까지 동원해가면서 그걸 찾아냈다. 근데.. 이거 찾으면 5만불 받은게 증명되나? 이거 아주 웃기는 소리다.

또한, 학교에 입학하려면 잔고증명이 필요한데, 그 큰 돈은 대체 어떻게 마련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한국에서 잔고 증명 떼서 줬다"고 증명해서 아주 간단히 끝났다. 그러고보니, 나도 유학관련업에 종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국 은행의 잔고증명을 달러로 떼서 제출한 기억이 났다. 검찰의 "유학 재미"는 이만저만 스타일 구겨졌다.

왜 한명숙 총리가 법원에서 말 안하느냐는 악플에 대해서

이건 웃긴 항변이다. 법원에서 말을 할 차례가 바로 내일이다. 변호인 신문에서 할 것이고 최후 변론및 진술에서 할 것이다. 한총리가 말을 안한 것은 "물어서 대답을 하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검찰의 부도덕한 질문들에 대해서만 답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법원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개정 형사소송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피고인을 신문하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절차라고 생각하기도 쉽지만, 이미 증거조사는 모두 종결된 상황이다. 이미 말했지만, 증인선서를 안하기에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변호인이 옆에서 도와줘도 된다.

4월 2일 금요일. 오전에는 피고인 신문을 하고, 오후에는 최후 변론등을 하면서 공판 절차는 선고만 빼고 모두 마무리 된다. 4월 9일 오후2시, 역사적인 선고가 내린다.

검찰이 얼마나 정치적인 재판을 하는지 스스로 밝히고, 말도 안되는 논리로 피고인의 권리를 제한하려다가 졸지에 초딩이 되어버린 검찰의 굴욕... 검찰의 개혁이 왜 필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오늘 참관을 온 사법연수원생들은 과연 검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물론, 어느 대학교 법학개론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왔던데, 검사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냥 물음표로 남겨두기로 한다.

(재판 중간중간 상황에 대한 생생한 내용은 한글로 트위터 http://twitter.com/hangulo 에서 볼 수 있다.)

미디어 한글로
2010.4.1 재판 참관
2010.4.2 글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