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기자단

기차가 있어 즐거운 여행 - 나는 이래서 기차가 좋더라

한글로 2010. 7. 5. 13:44
기차가 있어 즐거운 여행 - 나는 이래서 기차가 좋더라



기차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기차가 지나가는 건널목. 우리는 그 길을 '땡땡거리'라고 불렀다. 물론, 그 기찻길로는 석탄을 실은 시커먼 화차들이 주로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곳에서 '땡땡' 소리가 날때마다,난, 저 위에 올라타서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 마치, 어느 소설속의 아이들과 같이...

기차는 언제나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항상 기차를 보면 마음이 설렜다. 마치, 지하철에서 내리면 지하철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드는 아이처럼 말이다.

KTX-산천(KTX2 시승식) 모습. 기차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기차는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한다

여행이란 것. 사실, 그것보다는 방학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시골은 여섯시간을 버스타고 가서, 다시 두시간을 더 버스타고 털털 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하는 깡촌이라는 것. 지금이야 그래도 쉽게 가는 길이 뚫리고, 버스 시간도 무척 줄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곳은 나무를 때서 밥을 하는 시골임에는 다름이 없다.

국민학교 시절('초등학교'라는 말을 쓰면 그 때의 기분이 나질 않는다), 시골로 가는 고속버스를 탈 때마다,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타기 전에 충분히 멀미약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묘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걸 '멀미냄새'라고 불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중간에 휴게소를 들를 때마다 그동안 토한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일과였다. 몇 번의 토를 해야 도착할지.. 대체, 이제 더 나올 것도 없는데, 왜 이리 목을 넘겨서 토가 나오는 것인지... 정말 어린 나이에 고속버스 여행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기차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기차는 돌고 돌고 돌아서 목적지까지 가는데 무려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새마을호 같은 것은 애시당초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시간을 생각해서 6시간만 걸리는 버스를 선택하셨다. 하긴, 나도 지금 선택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가는 귀향길은 멀기만 하니까.

그런데, 내 기억속에 기차를 탄 적이 한 번 있다. 아마 계속 토를 해대는 두 아이를 지켜보기 어려웠던 탓이었으리라. 그렇게 기차를 탔고, 멀미는 커녕, 가는 내내 맛있는 간식을 먹고, 지치면 드러누워 자고.. 하면서 기나긴 12시간을 갔다. 그때 비로소, 여행이란.. 시골을 가는 길이 이렇게도 편안할 수 있겠구나.. 처음 느꼈다.


기차는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어른이 되었다. 이제, KTX와 KTX 산천(KTX-2로 알려진) 덕분에 비행기보다 더 시간을 안들이고도 서울-부산 등을 오가는 시절이 되었다. 공항까지의 이동거리와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접근성 등을 생각하면, KTX가 더 이익일 때가 많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이제, 여행의 즐거움도 알고, 가면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느끼는 나이다. 아니, 가끔 친구들과 함께 가벼운 맥주 한 캔을 즐기며 뒤로 달려가는 경치를 즐기는 기분도 일품이다. 그리고 잠시 단꿈을 꾸고나면 금세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이런 즐거움은 기차에서만 느낄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말이다.

왜냐하면, 가끔 뱃속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갑자기 들어온 빈속의 커피 등에 군사들을 소집한 '대장'이 꿈틀거린다. 만약, 버스를 탔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이미 인도에서 그 아픈 배를 부여잡고 온갖 손을 다 따고, 온갖 혈을 다 누르면서 자그마치 세시간 정도를 참은 기억도 있다. 버스가 멈추자 무조건 달려나가서, 모든 것을 잊은채 인도의 어느 밭에 엉덩이를 까기도 했다. 아... 그때의 행복함... 하지만, 이내 버스 경적이 울리자, 급하게 다시 뛰어들어간 그 엄청난 상황...

어쨌든, 나는 화장실이 근처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래야 맘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아빠, 오줌마려'를 외친다. 그게 분명히 정도가 있을텐데... 아이들은 1,2,3,4..10이 아니라, 바로 1에서 10으로 뛰어오른다. 버스 안에서 그런 경우를 당하면, 답도 없다. 하지만, 기차는 정말 편하다. 그저 룰루랄라 손잡고 가면 된다. 화장실로! (예전에는 한동안 화장실이 있는 2층형 고속버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위생상의 여러 문제로 사라진 듯도 하다.)


기차는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아련한 기적소리. 북적이는 사람들. 묘한 이국적인 냄새. 발 디딜틈 없는 객실. 창문도 없는 창문. 후덥지근한 날씨... 인도 여행은 언제나 기차로 했다. 옆 동네를 가는데 18시간을 달려야 하는 인도의 거대함. 최고 30시간을 타면서 두 번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본 경험. 아무 일면식도 없는 내게 비좁은 자리를 내어주던 마음씨 좋은 어느 인도인들.

나는 기차를 보면 인도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미 10년도 더 된 꿈을 다시 꾸게 만든다. 언제나 인도를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때 까지 안녕. 다시 만날거야. 피르 밀렝게'를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생활에 찌든 지금, 어쩔 수 없는 '꿈'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얼핏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가끔씩 레일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묘한 꿈을 꾼다. 마치, 이름모를 인도의 한 기차역 (공교롭게도 그 기차역의 이름은 '고모'였다. 이미 10년도 더 된 그 기차역의 구조까지 아직 뚜렷이 남아있다)에 내려서, "대체 내가 탈 기차는 언제 올까?" 불안해하던 그 때가 생각난다.

(그때 탄 기차는 12시간을 연착한 기차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차도 내가 탈 기차가 아니었다. '고모'역에 팽개쳐지고, 그곳에서 비를 맞으며 6시간을 기다려서야 목적지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대륙을 가로질러 오는 열차는 각 역에서 1분씩만 연착되어도, 막판에 오면 수십 시간의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인도 뭄바이 기차역
사진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susanica/593394360/

그러다가, 이내 꿈을 깨고, 다시 북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생활속이다.

그래, 이런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 행복한거다. 꿈을 잃어버린 시대, 나의 꿈을 계속 환기시켜 주는 것은 바로 기차다.

다시 기차를 타고, 아이와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면서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다. 아마도, 아이도 나와 같이 기차 여행을 멋진 추억으로 남기리라... 그리고 훗날 또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내가 말야.. 옛날에 기차를 타고.."


코레일 명예기자단
미디어 한글로
201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