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총리 무죄, 결심 공판 참관기
* 이 글은 2010년 4월 9일 오후2시부터 있었던 한명숙 총리님의 결심 공판 참관기입니다. 하루 늦게 올리게 됨을 양해 바랍니다. ^^ 너무 기뻐서..
취재진들로 붐빈 입구
온통 취재진들로 둘러싸여 있는 법원이었다. 도로에는 중계차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재판이 있는 서관에는 온통 사진기자들로 북적였다. 이미 재판 시작 1시간 전이지만,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서관 311호실(이번 재판이 계속 열렸던 곳)로 들어가기 위한 중앙 출입구 검색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 눈에 익은 분들, 기자나 지지자, 정치인들이었다. 약 5미터 정도 되었을때부터 난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이 서너 자리를 맡는 여태까지의 관례상, 상당히 자리를 잡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시 30분부터 시작된 입장. 이미 들어가니 자리는 거의 없었다. 그냥 옆에서 서서 기록하기로 하고 자리를 양보했다. 금세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렇지는 못했다.
법정에는 예전과 다르게 비디오 카메라가 방청객을 향해 여러대가 배치되었다. 마치 촛불집회에서 경찰들이 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검찰의 무자비한 횡포는 눈감지만, 방청객의 인간적이고 당연한 소란 행위는 처벌을 하겠다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정말 몰라서 왜 찍느냐고 묻자, 상당히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경위의 얼굴... 그리 국민을 위한 태도같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2시 13분이 되어서야 입장했다. 그동안 법정은 완전 만원 버스를 연상케 꽉꽉 들어차 있었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나마 통풍이 되는 문마저 닫았다. 규정상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긴 했지만, 거의 숨조차 쉴 수 없는 공간안에 사람들이 버텨야 했다.
재판 시작, 긴장은 고조되고
재판은 형식적인 변론 재개 절차를 거쳐서 법적인 정당성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시 변론종결을 선언하고 선고를 시작했다. 원래 판결 선고시에 방청객을 제한할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소리를 치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재판장님의 부탁말씀이 있었다.
2시 19분. 먼저, 곽영욱 피고인의 횡령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 55만달러를 횡령했다는 것은 5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결론이 났고, 퇴임후에 후임 사장이 곽씨에게 건넸다는 5만달러는 정황상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리고, 이제 본 판결. 바로 한명숙 총리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다투는 부분이다.
한명숙 총리 사건은 허구임을 조목조목 밝힌 재판장 - 1시간에 걸친 설명
2시 23분경부터 시작된 재판장의 뇌물공여 부분에 대한 설명. 이미 다 알고 있듯이, 핵심은 이렇다.
2006년 12월 20일 공기업 취업을 부탁하기 위해서 총리공관에서 5만달러(당시 환율4천6백만원)를 의자에 놓고 전달하는 방법으로 건네 주었다. 이때, 다른 사람이 나가고 뒤에 남아 편지봉투 두개에 나누어 담은 봉투를 의자에 놓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나왔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한 쟁점을 정리하면 4가지다.
1. 곽영욱 피고인이 5만달러를 한명숙 총리에게 줬는가?
2. 당시 인사 청탁이 있었는가?
3. (1과 2가 성립했다면) 5만 달러가 청탁에 대한 대가성이 있는가?
4. (1과 2가 성립되었다면) 5만달러가 공기업 사장 지원을 도와주는 뇌물이라는 것을 알고 받았나?
▲ 결론부터 말하자면 1번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2,3,4번에 대한 판단은 아예 하지 않았다.
유일한 증거인 곽영욱 피고인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는가?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주었다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그냥 주었다고 했다가 의자에 놓았다고 한 거은 진술 번복이 아니고 새롭게 생각난 부분을 사실대로 이야기한 것이라고 한다. (전혀 믿기 어렵다.)
하지만, 재판부에서는 검사가 추궁하자 10만달러를 한명숙 총리에게 주었다고 했다는데, 이는 검사가 "눈을 부릅뜨고 물어보니 무서워서. 검사가 워낙 다그치니니까 무서워서 줬다고 했다"고 곽영욱 피고인의 법정 진술이 있었다. "검사님이 없어도 탁 죄를 만들잖아요.. " 이런 말도 있었다. 그러나 수사해보니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3만달러를 주었다고 말하게 되는데, 앞의 10만달러 부분과 뒤의 3만달러 부분을 조사한 검찰 조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곽영욱 피고인의 법정 증언과 조서에 따르면, "다른 죄를 말하면 선처될까봐 말을 했다"는 진술도 나온다. 또한 11월 9일 구속후 첫 조사때 나온 3만달러 이야기가 19일에 이르자 거짓말이라고 하고 안줬다고 하다가, 11월 24일에 이르러 다시 5만달러를 줬다고 자백한다. 이 당시에 검찰은 안줬다고 하는 곽영욱씨를 새벽3시까지 면담하는 강압수사를 자행한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자백을 했다고 했다.
-> 이 부분은 모두 거짓이다. 나중에는 의자에 놓았다고 말을 바꾸었고, 핸드백은 수행비서의 손에 있었다. 다른 참석자 모두 한총리가 건물밖에서 배웅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식으로 진술이 유력한 증거일 때, 대법원 판례은 그 사람의 사람됨을 보라고 했다. 하지만, 기억 못하는 사항까지도 검사의 요구에 따라서 진술하고, 다른 증거가 나오면 또 다른 기억이 났다고 진술을 번복하며,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후배까지도 면전에서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을 법정에서 한 사실이 있다. 이러한 사실등을 보면. 곽영욱 사장은 자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다른 진술을 쉽게하는 성격이다.
또한 진술의 임의성 부분에서도 심장병, 당뇨, 고혈압을 비롯 십여가지의 질병을 앓고 있는 70세 고령의 피고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 진술한 것으로 보인다. 구속된후에 뇌물 공여 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을 밤 11시 50분, 밤 9시 46분까지 조사했고, 12월 19일에는 새벽 2시까지 조사했다. 부장검사가 변호인의 참관없이 "건강에 유의하라는 면담"을 했다는 것을 의례적 면담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곽영욱 피고인은 극단적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12월 24일 뇌물 공여사실을 시인하자 오후 6시 30분에 조사를 끝내주었다. 이러한 상황들이 진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검사는 스스로 진술한 영상 녹화물도 있다고 했지만, 뇌물공여 최초진술(10만불), 부인진술(3만불) 등에 대해서는 조서조차 없으며, 곽영욱 씨의 법정 증언에 의하면 검사가 "전주고 나온놈 다 불어라." 라는 말을 했다고 했으나, 검찰 증거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수사과정상 중요한 진술도 없는 상황에서 추후에 녹화한 것이 임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뇌물 공여 인정하면서 생긴 곽영욱 씨의 이익
뇌물 공여를 인정함으로써, 증권 거래법 위반 혐의와 횡령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곽영욱과 가족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일이었고, 다른 대한통운 관계자와의 기소내용에도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은 횡령액 전체를 기소했지만, 곽영욱 피고인에게는 83억 중에서 사적으로 사용한 37억만 기소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은 곽영욱 피고인에게 준 29억원도 포함되어 있지만, 곽씨의 기소에서는 그 금액이 빠지고, 돈을 준 사람 기소 내용에는 들어가는 등 형평에 맞지 않다.
이는 검사의 재량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곽영욱 피고인 입장에서는 액수차이가 있기 때문에 궁핍한 처지를 벗아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협조적 진술 가능성이 있다.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도 내사 종결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검사가 문서를 법원에 제출하길 거부하고 의견서만 냈다. (이 사건은 곽영욱씨가 30억원 정도의 회삿돈을 횡령해서 여러차례에 걸쳐서 차명계좌를 통해 자신이 법정관리인으로 있던 대한통운의 주식을 거래했고, 마지막 거래에서는 1년 남짓한 거래에서 90억원을 벌어들었다. 시세차익 60억)
검찰의 주장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것이 아닌 장기투자의 성격을 가진다고 했는데, 이는 횡령한 금액인데다가 사장이 퇴임하면서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없자, 모두 매도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문제가 없었던 거래라면 굳이 차명계좌로 거래할 필요가 없었지 않나.
검사의 내사종결이 타당하다 해도, 곽영욱 피고인 입장에서는 태도바꿔서 진숧할만한 이유가 된다.
뇌물전달 과정은 허구일뿐
이 사건의 총리공관 1층은 경호팀에 의해 경호되고 오찬장은 외부를 향한 창이 있는 개방적 구조다. 경호원들의 경호와 수시 보안점검과 더불어 오찬 종료 무렵에는 수행과장, 경호팀장 등이 수행한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7.9m 떨어진 쇼파에서 떨어진 수행과장이 5.1초 안에 문앞에 도착한다.
또한 총리공관 의전상 총리가 통상적으로 먼저 나오고 참석자를 배웅하게 되어 있다.
왜 하필이면 공적인 장소에서 그렇게 뇌물을 주었냐고 하자, 총리가 된 다음 만날 수 없어서 그랬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하지만, 한총리와 곽영욱은 서로 인사 청탁을 하고 돈을 주고 받을 정도의 스스럼 없는 사이였다면, 왜 곽영욱이 한명숙 총리가 총리 취임후에 한 번 밖에 만날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것은 이상하다.
또한, 이전에 돈을 준다는 약속도 없었다고 증언했는데, 갑자기 양복 상의에서 돈봉투를 건넸는데, "그게 뭐냐"고 묻거나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을 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짧은 시간 (5.1초)안에 후다닥 처리하고 나왔어야 한다. 의심이 된다.
◆ 또한, 오찬장 문까지 5.1초 정도 걸려 나가게 되는데, 문이 열려 있고, 앞에는 수행과장과 의전 비서관이 서 있었는데, 담대하게 돈봉투를 숨기고 나왔다는 것도 상당히 비현실적인 일이다.
◆ 의자위에 올려놓고 나왔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상황인데, 그 상황에서도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 돈을 서랍장이나 드레스룸에 놓고 나왔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인데, 드레스룸은 문여는 소리가 커서 비현실적이고, 서랍은 소리가 나기도 하고 안나기도 하는데, 소리가 날지도 모르는 서랍장에 그렇게 대담하게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 바지주머니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코트는 승용차에 있었으므로 다른 곳에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 다른 일정으로 인해서 당시에 집무실로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인데, 두툼한 돈봉투를 받아서 처리하고 떠났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도 안맞고, 동석자의 이야기와도 다르고, 의전 절차에도 안맞고, 동석자와 수행과장 주시속에 행사가 이루어지는 정황을 고려하면, 돈을 받았다는 공소사실과 다른 사람 모르게 돈을 숨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곽영욱의 진술은 일관성, 임의성,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부족하고, 인간됨도 진술로 얻게되는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증언을 바꾸는 성격이다.
또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만한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쟁점 1 이 입증되어야만 나머지 쟁점이 성립하므로 2,3,4는 살펴볼 필요가 없다.
약 10분간 계속된 곽영욱 피고인에 대한 선고 배경
그리고, 약 10분간 다시 곽영욱 피고인의 형량에 대한 여러가지 고려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곽 피고인은 회사가 어려운 시기(법정관리)에 거액을 횡령해서 사적으로 사용했고, 당시 담당 법원이었던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우수관리인으로까지 선정되었는데, 만약 이 사실을 알았으면 선정하지 않았을 것. 이는 법원을 속이고 범죄를 저지른 것. 하지만, 반성하고 뉘우치고, 고령인 점 등을 고려했지만.. 집행유예 사유는 되지 않는다.
곽영욱 피고인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없다. (횡령혐의) 뇌물 공여 혐의는 무죄
한명숙 총리 무죄 (2010년 4월 9일. 오후 3시 35분)
한명숙 총리 무죄!
모두들 박수를 쳤고, 밖으로 우르르 나왔다. 이미 3시 35분 이전에 한명숙 총리의 무죄를 알린 신문사 등이 있었는데, 이는 재판장의 판결이 내리기 전의 일이었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무죄가 완벽했으니..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
나는 중간에 문자를 보내다가 저지당할까 꾹 참고.. 궁금해죽겠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하지만, 법원 내에서의 문자보내기가 금지된 상황이었고, 한 번 걸리면 아웃이었다. 거기에다, 도저히 나갈만한 공간도 없었다. 너무 사람이 많았으니..
어쨌든, 위의 트윗은 미리 한 시간 전에 적어둔 것이었다. 전송 버튼을 누를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
길고 긴 재판 참관을 재판을 마치고...
3월 8일에 시작한 공판은 4월 9일 결심공판 포함 14차례나 계속되었다. 결국, 한달동안 하루 걸러 하루씩 재판이 진행된 셈이다. 실제로는 주중에만 이루어지니, 거의 1주에 3-4회씩 진행되었다.
나는 첫 공판에 참석하고, 두번째 공판부터 재판상황을 스케치해서 올리는 일을 시작했는데, 몇 번만 하고 말려던 일이.. 너무 많은 호응덕에 멈출 수 없었다. 결국은, 거의 모든 일을 포기한 상황에서 공판에 참여하고, 매일 새벽까지 글을 써서 올리고, 쉬는 시간마다 나와서 트위터를 통해서 현장 상황을 알렸다.
나의 노력이 과연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재판 과정을 적은 다섯권의 수첩과, 그동안 적어놓은 내 블로그의 글이, 진실을 밝히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빈다.
또한, 이번 재판은 거의 형사소송법 개론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의 완벽한 재판이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법리 다툼으로 인해서, 서로 법전과 논문을 내놓고 토론을 하기도 하고, 합의해 가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틈만나면 앞에 있는 기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비열한 행동을 할때마다 욕설이 속에서 솟구쳤다. (물론 하지는 못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재판이다. 2심, 3심까지 가야하고, 한총리를 향한 검찰의 냄새나는 이상한 수사가 또 시작되었다. 역시 이번에도 검찰 수사 전에 언론에 크게 알리는 전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재판에는 관심이 없고, 중간에 뻥뻥 무엇인가를 터트려서 한명숙 총리 흠집내기에 힘쓸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재판이 "돈을 주긴 줬는데 확실히 증명못한 사건"이 아니라 "돈을 준 적도 없는데, 검찰이 가상적으로 만들어낸 사건"이라는 것을 주변에 알려야 한다. 또한, 재판부의 판결에는 "골프"에 대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안나온다. 이 사건과 골프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검찰과 한나라당은 이 부분을 무슨 보물이나 되는 양 이야기를 한다. 아무 상관없는 아들의 미니 홈피까지 끌어들이면서 모욕주기에 힘썼던 검찰... 앞으로 역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모르겠다.
어쨌든, 재판은 끝났다. 이 재판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두 눈으로, 두 귀로 똑똑히 그들의 소리를 들었고, 그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가설을 세웠는가 봤기 때문이다.
진실은 승리한다.
* 이 글은 메모에 의해서 쓰여진 것으로 재판관의 말과 약간 어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판결문을 입수하는대로 반드시 이곳에 공개하겠다. (공판 판결문은 누구나 받아볼 수 있다.)
참고기사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07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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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9. 재판 참관
2010. 4.10 글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