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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사는 세상

시각장애인도 출구번호를 알고 싶다 - 장애인 이동권 체험 연재 (5)

시각장애인도 출구번호를 알고 싶다
장애인 이동권 체험 연재 (5)


이 글은 부산지하철 노동조합이 2009년 4월 4일 주최한 "장애인 이동권 체험 행사"에 참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이 행사의 취지에 대해서는  아래 글들을 참고해 주십시오.

블로거들이 지하철 장애인이동권을 취재합니다 http://blog.busansubway.or.kr/11 [땅아레]
지하철노조가 블로거 8명을 초청한 까닭  http://2kim.idomin.com/818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지하철 계단 난간의 점자 표기 본 적 있나요?

100% 모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곳에 '지하철 계단 난간 (안이든 밖이든)'에 아래와 같은 모양의 점자 표기가 되어 있다. 매일 지나치기 쉬운 '하찮은' 것이지만, 이 표기는 누구에겐가는 아주 소중한 길잡이가 된다.

난 오랫동안 이런 표기들을 수집해 왔다. 그리고 종류별로 분류를 해 보았다.



위와 같이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은 채 "점자"만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각장애인 안내 점자" 등의 안내 문구와 함께, 혹은 픽토그램(심볼)과 함께 점자를 적어 놓은 경우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게 뭔지 궁금해할 사람들이 소중히 다루도록 하기 위함인 듯 하다.

하지만, 위의 네 가지 예제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왜냐하면, 오직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무슨 개 풀뜯어 먹는 소린가? 점자 표기가 당연히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있어야지, "청각장애인"을 위해서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니다. 아래의 점자 표지판을 보자.


아하! 이제 눈치챘는가? 적어도 이런 식으로 계단 난간에 있으면, 비시각장애인은 "눈"으로 확인하고, 시각장애인은 "손끝"으로 확인하게 된다. 덧붙여서 저기 있는 점들이 "점자"라는 것을 알려주든지, 간단히 점자의 구성을 보여주는 그림설명을 곁들이면 안성맞춤이겠다.


유니버설 디자인(다살이 디자인) -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가 편리한 것

바로,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물건을 디자인 하는 것"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다살이 디자인'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점자표시 엘리베이트 버튼'도 그런 것의 일환이다. 이제는 점자가 찍히지 않은 제품은 나오지도 않거니와 이는 법률 위반이기도 하다. 즉, 하나의 버튼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편리하게 사용하게 된 셈이다.



조금만 더 신경쓰면, 더 좋은 "다살이 디자인"이 나온다

앞의 예를 다시 생각해보자.


이번에 부산에서 발견한 이 표지는 많이 망가져 있었다. 실제로는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점 두개가 찍히지 않은 상태로 판단되었다. 그런데, 이 표지는 점 두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감동적이지 못할 뻔 했다. 먼저, 비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안내문구가 없었고, 둘째.. 가장 중요한 것인데.. "출구번호가 없다"


시각장애인도 출구번호를 알고싶다!

지하철을 중심으로 길을 가르쳐 줄때는 보통 '몇번 출구로 나와서 몇미터' 이런 식이다. 시각장애인이라고 다를리 없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용 안내 표지에는 하나같이 '출구번호'는 쏙 빼놓았다. 시각장애인인 '김진'씨의 경우 '다른 것 다 빼고 출구 번호만 적어도 좋겠다'고 할 정도다. 현재는 "ㅇㅇㅇ 방면" 이런 식으로만 쓰여 있어서, 실제 시각장애인은 이 표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얼마나 웃긴 일인가. 시각장애인 생각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시각장애인에게 쓸모가 없다니...

그러니, 괜히 이상한 지명 그만 적고, 출구번호라도 큼지막하게 적어 놓으면 좋겠다고 한다. 특히, 곳곳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띄엄띄엄 있으면 지하철에서 헤맬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다살이 디자인"의 핵심은 '배려'

내가 디자인 전문가도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여태까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다살이 디자인'의 핵심은 '배려'다. 적어도 장애인이 무엇을 불편해 할까 물어보고, 그것을 해결해 주려는 노력 말이다. 그냥 어림짐작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대충' 해결해 놓고 선심쓴 척하는 것은 진정한 배려가 아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자동차의 손잡이에도 세심하게 점자를 넣어주는 '배려'가 바로 제대로 된 다살이 디자인이다.

▲ 택시에서 발견한 점자. ('도어 핸들'이란 단어는 맘에 안들지만)


아무쪼록 지하철 측에서도 (부산이든 서울이든 어디든) 이런 시각장애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각종 계단 난간에 점자 표기시 반드시 출구번호를 넣어주기 바란다. 유니버설 디자인...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자.







미디어 한글로
2009.4.7
http://media.hangul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