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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헛발질 하기

어이없는 대학병원 행태 - 10분이면 될 것을 2주를 기다리게 해?

어이없는 대학병원 행태
전화하면 예약 불가, 인터넷엔 자리가 널널
10분이면 가능한 검사를 2주나 기다리게 하다니!


갓 태어난 아이가 아프면...

아직 세상을 본지 2주도 채 안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간 것은, 정기적인 검진을 위해서였다. 산모는 산부인과 검진을, 아이는 소아과 검진을 받는다. 그런데, 아이의 여러가지 점을 이야기하자, 의사는 눈이 둥그래진다.

"그래요? 여긴 아주 심각한 부위인데, 여기가 튀어나와 있으면 안돼요. 이상하다. 왜 신생아실에서 이걸 발견하지 못했지?"

하늘이 덜컥 내려 앉는다. 앞이 캄캄해진다. 가슴속에선 울컥 화가 치민다. 아이의 상태를 관찰한다면서 태어난지 이틀이 지나도록 면회도 찔끔찔끔 해주던 그 병원에서 대체 무슨소린지.

아이를 집에 데려와서 기저귀를 갈다가 발견한 것은, 꼬리뼈 정도에 있는 작은 혹이었다. 만져보니 딱딱했다. 근데 대칭점에 있지 않고 한쪽에 있었다. 아내는 이상하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 엉덩이에 살이 제대로 안붙어서 그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왜냐하면, 아이를 면밀히 관찰하고 퇴원시킨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화를 내려고 했지만, 다음 이어지는 말에 그냥 입을 다문다.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세요. 오늘은 토요일이니 응급실로 가서 초음파를 봐야 해요. 진료 의뢰서를 써줄테니, XX병원에 가세요."

이젠 뭐 싸우고 뭐고도 없다. 무조건 네!네!를 연발하면서 택시를 잡는다. 그리고 멀고 먼 큰 병원에 도착한 것이 이 일의 시작이다.

큰 병원 응급실. 기다리기만 하다가...

간단히 진료만 받고 올 생각이었기에, 아이의 옷가지며 분유도 부족한 상태. 그 상황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좀처럼 차례는 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엉덩이를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말... "일단은 아파하지 않으니 응급한 상황은 아닌것 같구요. 외래 진료 예약과 초음파 예약을 하세요." 밖에 나가서 기다리세요... 그래서 기다렸다. 하두 기다리기 지루해서,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결국 들은 말은.. 외래 예약을 다음주에 하고, 초음파 예약은 내가 직접 따로 하라는 것이다. 대기자가 제법 많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그래서, 그런 정도라면 집 근처의 "큰 대학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비슷할테니 말이다. 5만원이 넘는 진료비를 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큰 대학병원, 전화 예약 자리는 없고, 인터넷 자리는 있어? 병원이 저가 항공사인가?

그리고 집에와서 예약을 시도했다. 먼저 전화를 걸었다. 가장 빠른 날짜가 목요일이라는 답변이었다. 가만.. 그러면 꼬박 1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데... 응급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을 믿어야 하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하나? 아무리 물어봐도 그게 제일 빠르댄다. 그래서 그냥 예약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데, 곧 친척분이 다급한 전화를 했다.

"인터넷에서 예약해봐! 월요일에도 예약가능해!"

이건 뭔가? 어떻게 전화로 읍소하면서 부탁해도 없던 자리가, 인터넷으로는 되나? 아직 주민번호도 안나온 아이라서 좀 어렵기는 했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서 예약하는 화면에 갔다. 세상에나.. 인터넷에는 예약 자리가 넘쳐나고 있었다. 심지어 월요일에도 널널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화를 낼 시간은 없었다. 입이 바짝 바짝 마르는 일요일을 거쳐서, 월요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접수하는 곳에 물어봤다.

"왜 전화 예약에는 자리가 없다고 하더니, 인터넷으로 하니까 예약 자리 널렸던데요?"

"아, 인터넷용 자리가 따로 있어요"

인터넷용 자리가 따로 있다..? 인터넷용이 따로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소리다. 바로 항공사에서 예약 시스템에서 쓰는 방법이다. 인터넷 예약용 자리를 따로 확보해서 구분하는 방법. 저가 항공사는 예약 콜센터의 부하를 줄이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일찍 예약하면 할인까지 해준다.

그런데, 병원이 저가 항공사인가?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데, 인터넷으로 예약한 사람을 위해서 우대 자리를 남겨둔다고? 그러면, 적어도 전화 상담할 때 "인터넷으로 한 번 해보셨어요?" 라고 물어라도 보든가.. 자기들이 인터넷 보고 예약해주면 안되나? 이게 무슨 벼락 맞을 소리인가? 전화로 문의한 사람은 그럼 죄다 바보인가? 그 사람들은 일부러 비워둔 그 예약자리에 들어가면 큰일 나나?

그런데, 아직 흥분하지 마시라.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 드라마속의 "좋은" 의사를 현실에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걸까?


겁은 있는대로 다 주고, "2주후에 검사 가능?" - 사랑과 전쟁 찍나?

아이의 상태를 살핀 의사는 상당히 충격적인 말을 했다. 일단, 신생아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심각할 경우에는 척추(척수)에 이상이 있어서 아이가 걷는데 지장이 있거나 여러가지 장애가 올 수 있으니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엊그제 응급실 의사와는 또 다른 말. 그럼, 만약 응급실 의사를 믿고, 혹은, 전화 예약만 믿고서 1주일을 또 허비했다면.. 만약 아이가 심각한 상태라면... 나는 부모로서 씻지 못할 후회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초음파 검사를 먼저 하자고 하길래, 언제 가능하냐고 했다. 한두시간 후라도 기다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의사는 2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많이 밀려 있다고 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더 빨리 하는 방법은요?"
"입원을 시키면 됩니다."

입원을 하면, 순서를 조금 바꾸는 것이 용납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화요일이 될 수도, 목요일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아무런 문제없이 잘 놀고 있는 아이를 검사 빨리 하겠다고 병원에서 지내게 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아내는 아직 몸조리 기간인데, 같이 병원의 차가운 침상에서 아이와 함께 지낸다면... 끔찍했다. 입원을 하지 않고, 빨리 하는 방법을 부탁해 봤다.

의사는 단호했다.

"지금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다 위중한 상태의 환자들이에요. 순서를 바꾸거나 하면 다 흐트러지죠. 큰 병원 시스템이란게 그래요."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소아 초음파를 보는데, 그 순서가 오려면 2주가 걸린다고 덧붙였다. 근데 정말 이상했다. 위중한 환자가 그리 많다면, 왜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진료를 할까? 월화수목금.. 이렇게 하면 2주가 아니라 이틀만 기다려도 될게 아닌가?

난 마지막까지 물어봤다.

"혹시, 신생아 초음파를 볼 수 있는 일반 병원은 없습니까? 거기라도 가서 빨리 검사를 해야 안심을 할 수 있겠는데요. 어차피 쓸데없는 입원을 하는 이유가 초음파를 보기 위한 것이라면, 그 편이 더 낫지 않나요?"

의사는 몇가지 안을 제시하는데, 그 또한 다 불명확했다. 자기 병원의 본원에 응급으로 들어가서 입원을 하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로서는 별로 탐탁치 않았다. 거기에 덧붙이는 것은 "아버지의 태도를 보니, 여기서 치료를 받으면 계속 불평을 해댈 수 있을 것 같다..." 뭐 이런 말까지 했다.

한마디로 "닥치고 그냥 하라는대로 해! 아니면 딴 병원가!" 이거였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는 의사선생님께 여쭈어봤다. 알아봐 주시겠다고 하시고선 5분후에 바로 전화가 왔다.

"대학병원에서 소아 초음파만 전문으로 보시던 분이 계시는 영상의학과(진단방사선과)가 있으니 그곳에 가서 보면 될거야"

위치까지 상세히 알려주셨다. 그래서 아까 그 의사에게 가서 말했다. 의사는 단호했다.

"그 분이 얼마나 실력이 좋은지 모르겠지만, 우리 병원의 그 분이 상당히 잘 보시는 분이다."

난, 무슨 소린지 알아 들었다. 자기 병원 아니면 안된다는 뜻이다.

"좋습니다. 그러면, 내일 입원하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초음파를 외부에서 보고 오겠습니다. 그 결과를 맹신하지 않고, 내일이 되었든, 말씀하셨듯이 목요일이 되었든, 보도록 하죠. 그러면 되겠죠?"

그래서 입원 수속을 하고서 부랴부랴 이동했다.(총 택시비만 10만원이 넘게 나온 날이었다.)

그 선생님이 그 선생님! 하늘이 도우시다

아직 출생신고가 안된 신생아를 받아본 적이 없는 그 영상의학과는 제법 규모가 있었다. 어차피, 의료보험 적용도 안되는 검사라고 하니, 비보험으로 무조건 접수했다. 5분정도만 기다리면 검사를 해준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에 벽에 있는 그 선생님의 약력을 찾아서 읽던 도중, 난 기절할 뻔 했다. 이 분이 현재 아까 그 대학병원에서 소아 전문 검사를 하고 계시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물어봤다.

"이 선생님이 그러면, XX대학 병원에 출장가시는거 맞나요?"
"네, 화요일하고 목요일에요"

아. 이럴수가!

2주를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던 그 전문가 의사선생님은 바로 이곳 외부 병원에서 계속 진료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예약하고 2주를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던 그 선생님을, 여기 병원에 도착한지 5분만에 만났다. 나는 울어버릴뻔 했다. 정말 하늘의 도움이 아니고서야... 예수님, 부처님, 알라..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싶었다.

검사는 간단히 끝났다. 별 문제는 없다고 판단되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서 MRI정도는 찍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검사한 데이터는 모두 그 대학병원에 내일 가서 저장해 놓고, 의사선생님께도 말씀을 드린다고 하셨다. 정말이지 감격, 감격...


대체, 대학병원은 뭐하는 곳인가?

우리가 큰 병원을 찾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 병원에서만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해서 그런거다. 혹은, 다른 곳보다 실력이나 장비가 뛰어나서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검사할 선생님을 외부에서 초빙해서 오면서, 나쁘게 이야기 하면,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서 쓰면서, 애꿎은 환자들을 2주 이상 기다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 나쁘게 이야기 하면, 그런 절박함을 이용해서 입원을 시켜서 병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만약, 대학 병원에서 2주를 기다려야 하지만, 그 선생님의 개인 병원에 가면 10분만에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대학병원이 그냥 폭삭 망해버릴까? 아니면, 대학병원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까? 꼭 대학병원은 무조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식으로 그렇게 가야 하나?

사람을 더 뽑든지, 혹은 기계를 더 사든지, 아니면 다른 병원과 협력을 하든지 해서, 적어도 "사람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본적인 의술을 펼치면 안되는 것인가?

앞서 이야기한 "인터넷 우대 예약 시스템"도 어처구니 없거니와 10분이면 될 것을 2주를 꾸역꾸역 기다리게 하는 대학병원의 행태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어디 이것 뿐이랴. 대학병원, 아니 종합병원의 비합리적인 부분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부조리함을 당하는 사람이 환자와 환자 가족이라서 "쫓겨날까봐"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 낫고 나면 "더러워서" 말을 안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식이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의료시설과 수준이 세계 최고이면 뭐하나?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아주 이상한 성격을 가진 장사꾼"이 되어있으면 어떻게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나?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난다. 생각 같아서는 병원 이름까지 밝히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밝히지는 못한다. 단지, 병원 관계자들이 조금이라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추가 (2008.11.29)

의사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들께서 냉정하게 '별로 급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오버한 보호자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서, 그 간극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병원에 간지 2주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수술까지 결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했다면, 2주 지난 시점에서도 아무런 치료도 못받고 안절부절만 하고 있겠지요. 제 불평이 어디가 잘못이 되었나요? )

저희 아이는 대학병원에서 "더 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거기가 더 잘할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큰 대학병원"은 저희집에서 택시비로 4-5만원(편도)이 나오는 곳이죠. 그것보다 아이가 두어시간 가까운 여행을 열댓번 해야 된다고 하니 끔찍하더군요. 거기다가 같은 대학병원인데도 "영상자료는 거기 가서 새로 찍어야 합니다"라고 친절한 안내까지.. 제가 이리저리 뛰면서 찍은 초음파 사진은 그냥 저기 멀리 안드로메다로.. -.-;

어쨌든, 그래서 조금 더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갔습니다. 운이 좋아서 바로 다음날 예약이 되었고, 친절한 선생님께서 그날 모든 촬영과 검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더군요. (처음부터 이랬으면..) 그리고 다음주에 수술 날짜까지 잡았습니다.(저는 오히려 천천히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선생님께서 서두르시더군요. 또 보호자가 급하게 해서.. 어쩌구 라고 악플다실 분들을 위한 설명입니다.) 

뭐 여러가지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저는 모든 대학병원,종합병원이 조금만 더 환자의 편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할 뿐입니다. 택시비가 왕복 5만원 이상 드는 곳, 무엇보다 한달도 안된 아이가 하루에 두어번 그렇게 이동하고 나면 잠도 못자고 뒤척이더군요. 그런데도 몇주후(!)를 주장하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부모들은 속이 시커멓게 탑니다.

수술이 잘 끝나길 빌며, 여러 도움말씀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의학지식(?)을 알게되었네요. 한 의사선생님이 두개의 병원에 근무하지 못하니 불법이라고 하신 분들은... 글쎄요. 개인병원 가면 대학병원 진료한다고 자랑해 놓은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더군요. 불법이 아니라 편법으로 하든, 제가 간 그곳의 선생님은 분명히 그 대학병원에 자료까지 주시고 진료하신 분과 상의까지 했다고 합니다. 대체 현실도 제대로 모르시는 분들이 어려운 말로 훈계부터 하시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지 못합니다. (2008.11.29)






미디어 한글로가 아니고..
그냥 아이아빠 한글로.
2008.11.26
http://media.hangulo.net


※ 참고로 소아 초음파를 위해서 피를 말리면서 2주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찾아보길 권해드린다. 물론, 큰병원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초조하게 2주를 보내느니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는 것이 낫다.

※ 혹시 대학병원/종합병원의 비합리적인 부분에 대해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아래 댓글에 (비밀댓글도 좋음)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리를 해서 다시 글을 쓰는 것도 생각중입니다. 제가 어느 영상의학과 병원에서 했는지 궁금하신 분은 비밀 댓글로 이메일을 남겨주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