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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초고속 승진에서 퇴사까지 - 나의 하룻밤 취업 이야기

초고속 승진에서 퇴사까지 - 나의 하룻밤 취업 이야기


어떤 술자리, 어떤 면접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몇년동안 하던 일을 접고 새롭게 출발하려고 여기저기 원서를 내던 취업 준비생이었다. 그러나 이미 서른 중반을 꺾어진 나이에 그리 만만한 일자리는 흔치 않았다. 거기에다 경력은 극과 극을 달리는 다양한 일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헛살지는 않았는지 주변에서 한 두건씩 면접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그런데, 대부분 편안한 면접인지라 술자리 면접이 잦았다.

그나마 면접이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면, 컨디션에 여명에 잔뜩 위와 간을 보호해 놓고서 가겠는데, 그냥 '술이나 먹자'고 했다가 면접을 보는 일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여간 불안한 위치가 아니었으니.. 결국 기댈 것은 내 평소 주량뿐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술을 계속 먹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주량이 팍 줄어든다. 아니, 술을 많이 먹긴 하지만 그게... 빨리 취한다. 그래도 '먹던 가닥'이 있으니 그리 엉망으로 취하진 않지만 말이다.


취업 - 고속 승진 - 퇴사까지, 불과 두시간

그 날도 그랬다. 잘 아는 분의 술을 얻어 먹으러 갔다가, 갑작스런 면접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런데 술 몇 잔이 오가고 나서 바로 취업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내가 원하던 연봉보다 높게 말이다. 너무나 호탕한 사장님 덕분에 별로 어렵지 않게 이야기가 진행된 탓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았던 탓일까. 아니면, 소개시켜 주신 분에 대한 신뢰가 컸던 탓일까.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주는 술 다 받아 먹었다. 어허...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왔다. 그런데. 취하면 취할수록 내 직책은 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냥 단순한 과장급에서 계열사의 대표이사까지 올라가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내 앞날을 위해서도 경력관리가 필요하니 대표이사직을 하나 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조언도 함께 들었다.

허허, 나는 더욱 하늘을 나는 듯 했다. 생각해 보라. 엊그제까지 취직을 위해서 애쓰던 어느 가장이 하루 아침에 취직과 더불어 초고속 승진을 거듭, 대표이사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파격적인 대우까지. 더 이상 바랄 나위는 없었다.

소주는 이미 쓴 맛을 잃었다. 달디 달았다. 그러니 대책없이 퍼붓기 마련.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제 더 이상 오를 필요 없는 초고속 승진에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갑자기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그 의견 충돌이 무엇이었는가는 밝히지 않겠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말이 그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주 가볍게 던진 내 한 마디가 뭐 그리 중요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 사장님은 내 의견에 상당히 기분나빠 하시더니, 갑작스레 '자신이 너무 경솔했다'고 하면서 '없었던 일로 하자'고 통보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대표이사까지 초고속 승진, 퇴사까지.. -.-;



믿어지지가 않아서 다시 물어보았더니, '오늘 있었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하셨다. 하늘이 무너지고 내 가슴이 무너졌다. 순간 휘청하기까지 했다. 잠시 화장실에 갔더니, 그동안의 피로가 갑자기 터졌는지 코피까지 흘렀다.

그리고 나와선 '사람을 가지고 장난 치시면 안됩니다!' 라고 일갈하곤 자리를 떴다.

눈에선 눈물이, 코에선 코피가 흘렀다. 그때가 추웠는지 더웠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단지, 이미 휘청거리는 내 다리는 하루에 너무 많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한 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육교 위에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물론, 아는 형에게 전화를 하고서 말이다.


선택한 이상 누구도 원망말라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지만, 그 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만약, 그날 그 논쟁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대표이사가 되어 있을까?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그 후에도 그 사장님과 충돌없이 지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제 다 부질없는 추억이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 좋은 제안이 많이 들어왔고, 그렇게 나는 몇 달째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나는 직장을 많이 옮겨보았다. 결국 그만큼 구직도 많이 해본 셈이다. 매번 직장을 옮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선택한 이상 누구도 원망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내 인생, 내가 하는 선택이다. 이곳이 저곳보다 더 나을 것 같았는데, 막상 와보니 아니라는 둥의 불평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면 자신이 더 좋게 만들면 되는 것.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다.

비록 내가 '취업'과 어울리지 않는 나이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생은 누구도 모른다. 언제 또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꿋꿋하게 내 자신과 가족을 책임질 자신이 있다. 그게 바로 내가 믿는 유일한 나의 자산이다.


미디어 한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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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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