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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헛발질 하기

각하의 부활? - 영화자막에서 각하를 없애자


'각하'의 부활?

권위주의의 상징 '대통령 각하' 영화자막에서도 없애자



영화 자막은 아직도 5공?

오래간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어제 케이블TV를 보다가 영화의 전편을 보여주는데, 갑자기 속편을 보고 싶어져서였다. 전편의 감동이 커서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재미 있지는 않았다. (굳이 제목을 밝히지 않아도 이정도면 다 알리라)

그런데, 자꾸 거슬리는 자막이 있었다. "대통령 각하... 네, 각하" 이런 대사가 자꾸 나오는거다.

좋지 않은 영어실력이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대통령 각하"는 "Mr. President" 라고 들렸다. 그리고 "네, 각하"는 "Yes, sir" 정도였다.

각하? 이미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각하"라는 호칭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사라진 단어다.  어렸을때, "전ㅇㅇ" 이름 뒤에 "대통령 각하"를 안붙였다고 담임 선생님한테 호되게 혼난 기억덕분인지, 나도 언제나 "전ㅇㅇ 각하"가 자동으로 나온다. 물론 내 이전 세대에서는 "박ㅇㅇ 대통령 각하"가 아주 익숙한 호칭일 것이다.


"각하" 호칭은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사라지고 "대통령님"이 남아

각하를 백과사전(위키백과)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되어 있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35772

각하 (호칭)

각하(閣下)는 '전각 아래에서 뵙는다'는 뜻이며, 귀족이나 고위 관리, 고위 장성 등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2인칭 말이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부통령,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과 심지어는 군대의 장성들에게도 붙인 존칭이었다.

박정희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제5대 대통령이 되자, 박정희는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이 존칭을 붙이게 하였으며, 제14대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도 청와대 안에서는 여전히 '대통령 각하'로 불리었다.

하지만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는 각하의 존칭을 제외시켰다.


최고 존칭은 "폐하(陛下)"였고 그 다음으로 "전하(殿下)"도 있었다. 요즘 MBC 드라마 '이산'에서 자주 듣는 호칭은 "저하(邸下)"다. 모두 차이는 있지만, "밑에서 우러러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이다. 감히 마주대하거나 위에서 내려다보면 큰 일이 날 정도로 고귀한 분이란 뜻이다. 왕정국가에서나 쓰이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비슷한 '각하'는 우리나라에선 대통령 뿐만 아니라 장성까지 쓰여왔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 1998년 당선자 시절, "각하"는 권위주의의 상징이므로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대신에 미국에서도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라고 하는데, 미스터에 해당하는 '님'을 붙여서 "대통령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일대 사건이었다.

"대통령님으로 불러주세요"  [조선일보] 1998.1.19
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8011970003
(일부발췌)
그는 먼저 '각하'란 호칭은 권위주의적이므로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 뒤, 그 대안으로 "그냥 '대통령'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님'자를 붙이면 될 것"이라며 "미국에서도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하는데, '미스터'가 곧 '님'이란 뜻"이라며 그같이 말했다.

즉,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통령 각하"시절을 마치고 "대통령님"이 된 셈이다.


사라진 '각하' 호칭, 왜 영화자막에만 살아 있나?

이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각하'라는 호칭이 외화의 자막에서는 계속 살아 있었다. "미스터"를 "각하"로 번역한 것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아니, 오역에 가깝다. 이번에 본 영화만 그런게 아니고, 사실 TV의 외화 더빙에서도 그렇고 늘 심심치않게 들리던 호칭이 '각하'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번역가들이 그렇게 쓰고,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아니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통령님"이고 외국 대통령은 "각하"일까? 그것도 아니지 않나?

물론, 최근 한 탤런트의 이명박 당시 후보에 대해 '각하 힘내십시오'를 외친 사건 을 감안하면 아직도 그 망령이 살아있기는 하다.[관련기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10여년간 써 온 '대통령님'이란 단어가 현재의 언어다.

영화 자막은 시대상을 반영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이제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대통령님"으로 해석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10년넘게 익숙하게 써온 말이니까 말이다.

영화 관계자 분들, 자막 번역가분들이 조금만 더 신경써주기 바란다.


미디어 한글로
2007.1.2.
media.hangulo.net